지난 20여년간 논란을 거듭해 온 철도구조개혁이 끝없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17일 정부가 제출한 관련법률 개정안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 말기를 맞은 정부 여당의 법안처리 의지가 미약한 데다 야당이 노동계가 반대하는 법안처리에 앞장설리 만무하다는 점에서 현 정부 임기내 처리가 물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 미뤄서는 안될 철도 구조개혁 =철도사업은 지난 1백여년간 유지돼 온 국유·국영 체제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에 봉착해 있다. 국가가 철도를 소유하고 공무원이 이를 운영하다 보니 버스 항공 등 다른 교통수단과의 경쟁에서 뒤처져 수요 감소, 적자 누적으로 고사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이는 70년대 43%에 달했던 수송분담률이 13%대로 추락하고, 96년 누적 영업적자 1조5천억원을 탕감 받고도 그후 5년만에 또 다시 영업적자가 1조5천억원이나 쌓이고 있는 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현재 8조4천억원인 부채가 2020년에는 28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참담한 성적표는 1백20여개 철도운영 국가중 남.북한을 포함해 인도 스리랑카 중국 러시아 등 불과 6개국만 채택하고 있는 공무원 운영체제를 한 세기가 넘게 고집한데 따른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 정부의 철도 구조개혁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구조개혁 법안은 시설부문과 운영부문을 분리해 시설부문은 공단화, 운영부문은 공사화한 후 2006년까지 민영화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런 구조개혁 방안에 대해 노조측은 표면적으로는 철도의 공공성이 훼손된다는 점을 반대이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내심 민영화시 초래될 고용불안을 더욱 걱정하는 눈치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는 시설부문은 공단을 통해 국가가 책임을 계속지게 돼 공공성 유지가 가능하고, 고용도 1백% 보장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실제로 관련법안에 고용보장이 명시돼 있고 2004년 개통될 경부고속철도 운영에 3천여명이 새로 필요할 것으로 보여 당분간 고용불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안에 대해서는 시설과 운영 분리가 최선의 방안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데다 언제 될지도 모를 운영부문 민영화를 지금 거론해 공연히 분란만 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 통합 ''공기업화''로 문제 풀어야 =정부가 정부독점에서 공기업 독점을 거치지 않고 바로 민영화로 가려는 조급함을 버리는 것이 첩경이다. 이는 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철도와 함께 대표적인 정부 독점사업이었던 통신산업의 진화과정을 보면 답이 자명해진다. 통신공사에 의한 공기업 독점을 거쳐 경쟁체제 도입과 민영화로 가는 길은 2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정부 독점하에 놓여 있는 철도산업에 대한 구조개혁 여정은 아직 시작도 안된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구조개혁의 완결판이라 할 민영화 문제로 정부와 노조가 대립하면서 허송세월하는 것은 모두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이러는 사이에 적자누증으로 정부의 재정부담은 늘어만 갈 것이고, 적자에 허덕이는 한 철도종사자의 지위는 날로 악화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우선 정부직영 체제인 철도청과 고속철도공단을 통합해 이를 공사화하는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현 단계에서 분할 문제와 민영화 문제로 공연히 분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철도노조도 공무원 직영체제를 더이상 고집해서는 안된다. 철도산업의 구조개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을 인정하고 오히려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 때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KT(옛 한국통신)가 구조개혁을 수용해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이 된 것을 생각하면 더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구조개혁을 수용한 일본과 스웨덴에서도 철도회사는 최고의 직장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국가 경쟁력 향상과 같은 거창한 구호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철도종사자들이 제 살길을 찾기 위해서라도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 한경종합연구소장.경제학 박사 kghwchoi@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