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햇동안 KEC(옛 한국전자)가 생산한 소신호형 개별반도체(SSTR;Small Signal TRansistor)는 1백억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87% 가량이 직접 해외로 수출되거나 수출용 전자.통신제품에 장착됐다. KEC가 개당 평균 중량 0.15g, 개당 평균단가 1.7센트에 불과한 소신호용 반도체로만 달성한 지난해 연간 매출액은 2천6백억원을 넘는다. 이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롬(Rohm)사에 이어 세계 2위다. 지난 99년 세계 9위에서 2년만에 7계단이나 뛰어올랐다. 회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3%에 이른다. KEC는 3년 안에 세계 1위로 올라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영상 음향신호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SSTR은 AV(오디오.비디오) 제품을 포함한 각종 전자제품과 통신기기 등에 필수적인 부품이다. 한때 IC(집적회로)에 밀려 저성장 사양산업으로 여겨졌지만 디지털 전자기기와 정보통신기기의 발달로 초절전형 경박단소화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시장이 되살아나가고 있다. 세계 시장규모도 지난해 22억달러에서 2003년까지 26억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경기를 타지 않는 효자상품 =SSTR은 규격화된 부품이지만 제품별 사양에 맞는 크기와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 비메모리 반도체에 가깝다. 이러한 제품 특성은 지난해 극심한 IT(정보기술) 경기의 불황속에서도 회사를 지켜주는 버팀목 역할을 했다. 메모리 반도체인 SD램 가격이 90%이상 폭락한데 비해 개별소자 반도체 가격은 7% 정도 떨어지는데 그치는 덕을 톡톡히 봤다. PC에 주로 사용되는 메모리 반도체와는 달리 KEC의 소신호용 개별 반도체는 많은 전자와 통신제품에 두루 사용되기 때문에 한두가지 제품 시황에 바람을 타지 않는다. D램 의존도가 높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엄청난 매출감소로 홍역을 치뤘지만 KEC는 지난해 매출 5천6백억원, 당기순익 3백50억원의 실적을 올려 예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오히려 반도체 경기가 바닥을 헤매고 있던 지난해 11월 이후 두달여 동안 주가는 2배 가량 올랐다. 메이드 인 마켓(Made in Market) 전략의 성공 =시장이 있는 곳에서 생산한다는 KEC의 현지생산-현지판매 전략도 지난해 불황을 넘길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90년 태국 치앙마이에 현지공장을 세운데 이어 93년에는 중국 우시(無錫)에 생산법인을 설립했다. 또 지난 연말께는 중국 현지법인의 생산능력을 2배로 늘렸다. KEC는 올해 상하이에 현지 판매법인을 세우는 등 공격적인 시장개척을 통해 2005년까지 현재의 4배인 연간 매출 2천만달러를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세계적인 전자 통신업체들이 중국시장을 겨냥, 앞다퉈 이 지역에 진출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중국내 생산.판매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상하이에 자체 물류창고를 설치, 업체의 납기 단축 요구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기 위한 작업도 추진중이다. KEC는 소신호형 개별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시장 1위를 달성하는 것이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KEC의 또 다른 강점으로는 전 세계에 골고루 퍼져 있는 영업망을 꼽을 수 있다. 국내 40%, 일본 50%, 미주 및 유럽지역에 10%씩 시장이 분산돼 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디지털 가전의 보급확대 및 이동통신기기의 꾸준한 증가로 향후 시장 전망도 밝다. 부품의 브랜드화 전략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전문업체인 KEC는 1969년 창업 이래 30여년간 전자부품산업 ''외길''만을 걸어 왔다. 이는 해외시장에서 선진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품질로 이어졌다. KEC는 ''부품 브랜드'' 시대를 열어가면서 ''한국의 인텔''을 꿈꾸고 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위주에서 탈피, 자사상표 수출 비중을 높여온 결과 지난해에는 자사상표 수출비중이 90%로 전년의 85%보다 높아졌다. 물론 기본은 품질이다. KEC의 첫번째 강점은 생산 현장에서 출발한다. 반도체는 정밀산업이다. 사람이 말할 때 입에서 나오는 미세한 먼지조차 제품 불량의 원인이 된다. KEC 구미공장의 반도체 생산라인 곳곳에는 금연 캠페인 슬로건과 경고문이 붙어 있다. 흡연 직후 흡연자의 입에서 비흡연자보다 20배에 가까운 먼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직원의 건강과 불량률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KEC는 대대적인 금연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KEC 곽정소 회장은 "주력사업인 소신호용 개별반도체 분야에서 초소형.초절전형 기술개발에 주력, 디지털 가전과 이동통신기기 시장을 집중 공략할 계획"이라며 "중국내 마케팅을 강화해 비메모리 분야를 대표적 수출효자 산업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