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 트렁크에는 쓰지도 않으면서 싣고 다니는 채들이 있다.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째 싣고 다니는 드라이버며 페어웨이 우드 등등. 거금을 들여 장만도 하고, 졸라서 얻기도 한 채들이다. 한때 영화를 누렸지만 어느날 삐끗하며 안 맞기 시작해서 지금은 뒷방살이를 하고 있다. 쓰지 않으니,다른 사람을 줘도 될 테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낡은 메탈드라이버를 쓰고 있는 후배에게 왠지 미안함을 느끼는 것도 트렁크의 그 드라이버 때문이다. 절친한 후배였으니 내가 쓰지 않는 티타늄 드라이버를 줘도 좋으련만 ''멋진 한방의 추억''을 버리지 못해서 몇 달간 망설였는지…. 매일 아침 그 드라이버를 보면서 ''줄까? 말까? 아니야,저게 오래된 모델이긴 해도 슬라이스 잡는 데는 그만이었잖아''라는 생각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는 어느 밤,우울해하는 후배를 위로할 거리를 찾다가 결국 덜커덕 그 채를 줘버린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섭섭하지만 잘했다''이다. 입어야지,입어야지 하며 십 년도 넘게 보관해오다 결국은 못 입고 버리게 되는 옷들처럼,혹은 마음처럼…,''한방의 추억''은 추억일 뿐 다시 현실이 되기란 힘들다. 며칠 전 4∼5년 전에 읽던 책을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그 때는 마음 깊이 공감하며 읽어서 밑줄까지 그었던 구절들을 발견했다. 우울하고 슬픈 그 문장들에 왜 밑줄을 그어 놓았던 것인지…. 한참을 떠올려야할 정도로 생경했다. 마음이 변해 밑줄들에 공감하기 힘들 듯,내 스윙폼도 변하고 체력도 변했다. 결정적으로 한번 마음이 떠났었기에 다시 마음을 붙이기가 힘들다. 그러니 트렁크의 채는 더 이상 멋진 한방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몇 년간 버리지도 못하고,지니지도 못하며 맴돌던 드라이버를 줘버리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두 채로 갈라졌던 마음을 오로지 지금의 채 하나에만 집중하니 스윙도 한결 가벼워지고…. 줄까말까 고민하며 트렁크를 차지하고 있는 채들이 있다면 눈 딱 감고 줘버리자. 옷장이고,마음이고,골프채고…. 버린 만큼 가벼워진다. 고영분 < 골프스카이닷컴 편집장 moon@golfsk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