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경제' 25時] (4) '고질병' 認許可.납품비리..돈.이권 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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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사장은 최근 국내 대형 자동차 회사와 서비스 계약을 맺었다.
3개월간 자동차 생산라인의 전기배선을 유지.보수해 준다는 내용이다.
A사장이 이 자동차 회사와 계약한 금액은 1억5천만원.
그러나 계약서에 사인하고 실제 받은 금액은 1억3천5백만원이었다.
A사장은 "계약금의 10%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며 "본사와 협력업체와의 계약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털어놨다.
A사장이 돌려준 1천5백만원은 A사장이 계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자동차 회사 직원들의 몫이다.
지난해말에는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에서조차 내부감사에서 대규모 비리가 발견돼 충격을 던졌다.
감사 결과 이 회사 일부 임직원들은 지난해 하반기에 협력사로부터 2백억원대의 주식상납을 받는 등 총 3백억원대의 뇌물과 향응을 제공받았다.
어떤 직원은 협력사로부터 받은 주식을 팔아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부패행위를 저지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부패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윤리의식 실종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각종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정부와의 관계로 눈을 돌리면 부패구조는 훨씬 더 크고 복잡해진다.
80년대 이후 대형비리사건으로 몸살을 앓아온 주택건설업계를 보자.
주택사업은 부지매입부터 완공까지 3년이상의 사업 기간동안 토지 형질변경 건축심의 사업승인 등 수많은 인허가 절차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주택건설업체들은 통상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업기간을 단축하는 한편 공공시설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무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게 마련이다.
지난 80년대 후반 신도시개발붐을 타고 중견 주택건설업체로 성장한 L사.
90년대 들어서도 수도권에서 노른자위 사업부지를 확보한뒤 짭짤하게 사업을 펼쳐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이 업체는 지난 98년 김포지역에서 공무원들과의 부패고리가 적발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이 회사 사장은 야산 등 싼 값의 땅을 사들여 사업부지를 마련한 뒤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줘 사업승인을 받아내는 일차원적인 부패공작으로 사업을 벌여 왔다.
H씨가 관청에 나타나면 관련 공무원들은 일단 자리를 피하는게 상책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뇌물주기에 도사로 정평이 나 있었다.
로비를 벌이는 사업자도 문제지만 돈을 요구하는 권력기관의 도덕성 해이도 심각하다.
정부 산하기관에 근무하다 친분이 있는 주택건설업체 사장의 권유로 주택업체로 자리를 옮긴 K씨.
그가 처음 맡은 업무는 수도권의 한 아파트사업과 관련된 것이었다.
임야를 사업부지로 점찍고 땅주인과 계약을 맺는 것까지는 쉬웠다.
하지만 이후의 과정은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다.
처음에 그는 해당 자치단체 담당자를 매일같이 찾아가 매달렸다.
하지만 담당자는 건성으로 들을 뿐 일언반구도 없었다.
한달 뒤 사업추진상황을 보고하라는 사장의 지시에 K씨는 아무런 진척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장은 자신만의 노하우라며 몇가지를 귀띔해 줬다.
K씨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사장의 방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직원을 시켜 은행에서 돈을 찾은 뒤 차 뒷 트렁크에 싣고 관청을 찾았다.
이튿날 예상을 넘어서는 반응이 나타났다.
담당 공무원에게서 잘될 것 같으니 기다리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이후 K씨는 다른 지역에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또 하나의 사업승인을 받아냈다.
이같은 고질적인 부패가 끊이지 않는 것은 각종 규제가 많은데다 거래 관계가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OECD는 부패라운드를 추진하면서 각국에 각종 규제의 철폐도 함께 권고하고 있다.
무분별한 규제가 많을수록 부패가 생길 개연성은 그만큼 커진다.
거래상대방에 대한 인허가권과 생사여탈권을 쥔 강자에 대한 견제장치가 제대로 없는 것도 부패를 막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당사자가 비밀만 지키면 부패고리는 웬만해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내부자들을 견제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LG경제연구원 강선구 부연구위원은 "공직사회든 기업이든 공무원이나 직원들이 내부사정을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다"며 "내부고발자 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 부패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비정상적인 거래는 결국 제품값 인상이나 하도급업체에 대한 부담증가로 이어진다.
부패가 개별기업은 물론 국가경쟁력까지 떨어뜨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