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업단지에 공장을 갖고 있는 40여 유화업체들은 요즘 불만이 가득하다. 산업단지 내에 있는 주민 1천7백91가구를 이주시키는데 업체들이 3백60억원을 분담해달라는 정부의 요청 때문이다. 총 이주비용 3천4백37억원의 10%를 넘는 규모다. 정부는 업체들이 이주비를 낼 의무는 없지만 그동안 산업단지에서 공해를 유발해 온 만큼 자율적으로 참여해달라고 통보했다. 기업들은 정부의 이같은 논리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발하면서도 정부나 주민들과 정면으로 대립할 수는 없어 공개적인 입장표명을 못하고 있다. 업체들은 이주보상비를 기업에 요청하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가 기업들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이주비를 결정하고 통보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지난해 불황으로 낼 돈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유화업계 관계자는 "주민 이주문제는 여수시와 산업단지공단이 해결할 문제"라며 "정부가 혼자서 대책을 마련하고 뒤늦게 기업에 보상비를 분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관치주의적 발상"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외국업체들은 더 난감해 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주주들에게 이같은 준조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사태가 이런데도 정부는 근본적인 처방보다는 기업들의 부담비를 깎아주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하려는 모습이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기업들이 이주비 부담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했다"고 주장하면서 "다만 경기가 좋지 않아 부담을 느끼고 있는 만큼 총리실과 협의해 분담규모를 2백억원대로 낮출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유화업계는 업계 의견을 석유화학공업협회로 단일화하기로 하고 의견수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업계는 "이전대책 자체를 처음부터 재검토하자"는 의견을 정부에 제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주민이주 문제는 장기화되든가 보상비를 예정보다 적게 지급하고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기업들이 돈을 내지 않더라도 추가로 국고를 지원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독단적인 이주대책에 기업과 주민들만 속앓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김태완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