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엔론사태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아프간전쟁 소식을 제치고 여전히 신문들의 1면 주요기사로 처리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점이 조금씩 옮겨가는 듯하다. 백악관과 의회로 향하던 화살이 회계법인쪽으로 과녁을 바꾸고 있는 것.이 사건은 ''백악관 게이트''가 아니라 엔론의 회계를 담당했던 회사 이름을 딴 ''앤더슨 게이트''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여론의 관점이 변한 이유는 간단하다. 부시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케네스 레이 엔론 회장이 회사가 어려워지자 오닐 재무장관 등 ''옛친구''들을 접촉했으나,이들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때문이다. 의원들도 아직까지는 합법적인 테두리안에서만 정치헌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제도''였지 ''사람''이 아니었다는 판단이다. 개인적인 뇌물 수수와 편의제공이 핵심인 한국의 각종 ''게이트''와는 큰 차이가 난다. 결국 여론은 회계법인의 구조적인 비리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우선 KPMG 프라이스워터하우스 언스트&영 딜로이트&투시 등 아더앤더슨과 함께 ''빅5''로 불리는 거대 회계법인들이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지금 불똥이 튈까봐 겉으로는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앤더슨의 탈락으로 ''빅4''가 돼 파이가 커질 것을 기대하며 속으로는 사태진정을 위해 관계기관에 치열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 회계법인의 로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최근 하비 피트 증권감독위원회(SEC) 의장의 말에서 알 수 있다. 회계법인을 감독하는 자리에 있는 그는 엔론사건이 터진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회계전문가들이 결코 썩지 않았다"고 회계법인을 비호했다. 그가 지난해 SEC 의장으로 임명되기 전 아더앤더슨의 고문변호사였다는 점을 알면 그렇게 이상한 말도 아니다. 미국 언론들은 피트 의장에게 "이제는 그런 입장을 바꿔 금융시장과 일반투자자들을 보호할 때"라고 꼬집고 있다. 회계사를 뜻하는 CPA의 P자가 일반대중을 뜻하는 ''Public''의 약자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면서 말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