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앞서 정당정치를 실시한 미국과 유럽은 오랜 정치개혁 과정을 거쳐 오늘날 정책중심의 정치문화란 결실을 얻어냈다. '인물정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정치현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 영국 ='인물정당'과 '정실인사'로부터 '정책정당'으로 변모한 과정의 산실이다. 근대적 의미의 정당정치는 1688년 명예혁명 직후 보수당의 원조인 토리당(Torries)과 자유당의 전신, 휘그당(Whigs)이 생기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농부를 빗대는 말인 '휘그'와 아일랜드 도둑을 의미하는 '토리'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19세기 중반까지 정당이란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됐다. 이는 국왕과 유력 정치가가 자기편 의원이나 선거운동원에게 고위관직과 연금을 부여하며 정국을 좌지우지한 '정실·패거리주의'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보스중심의 정치는 프랑스대혁명 이후 이념 비중이 높아지면서 정책중심의 정치로 변하게 된다. 특히 1차대전 이후 노동당이 자유당을 밀어내고 양대정당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더욱 가속화됐다.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했던 노동당은 노동조합으로부터 대부분의 자금을 조달했고 보수당은 민간기업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 따라서 노동당은 자연스레 재정지출 확대와 고용증대에 주력하고 보수당은 긴축재정과 민영화 확대에 힘을 쏟게 됐다. 물론 최근들어서는 이런 이념적 차이가 다소 줄어들었다. 특정계층이 아닌 보다 폭넓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상대방 정책의 장점을 적극 수용한 결과다. 노동당 출신 블레어 총리가 '제3의 길'을 주창하며 보수당 정권의 시장중시 정책을 수용한게 그 대표적 사례다. ◇ 미국 =1920년대 중반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간 양당제도가 확고히 정착됐으며 가장 큰 특징은 당수제도가 없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정당은 지방분권화, 다원화됐고 당내 상하조직간에 비교적 독립적인 관계가 이뤄져 있다. 그만큼 각종 위원회와 소위원회 활동을 통한 의원들의 자율성이 강하다. 정책결정과 선거운동 등에 대한 당의 통제력이 미약한 점은 상.하 양원의 원내총무가 원내정당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며 보완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선진국인 미국이 현재와 같은 민주적인 정당 운영문화를 갖게된 것은 불과 30여년 전부터다. 1968년 베트남전쟁 중에 열린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장 밖에서 유권자들이 당시 정치 지도자들의 폐쇄적인 정당운영에 항의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을 계기로 민주당의 당내 민주화가 정착됐다. 이후 민주당은 1972년 전당대회에서 예비선거제를 제도화했고 공화당도 민주당의 선례를 따르게 됐다. ◇ 독일 =독일의 정당은 당수는 있지만 당이사회가 당의 각종 집행권과 정책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또 각 주정부의 대표로 구성되는 연방참의원이 주정부와 연방정부, 각주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견제한다. 한마디로 특정인에 의한 정당 지배가 구조적으로 발붙이기 힘들다. 이런 독일정당과 정치의 특징은 사민당(SPD)이나 기민당(CDU)등 주요정당이 오랜 역사를 지닌 이념정당, 계급정당으로 당내 비판활동이 꾸준히 있었다는 점도 큰 역할을 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