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국내 금융계는 '사상 초유' '사상 최대' 등의 수식어를 동반한 이슈들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가장 큰 이슈는 미증유의 초저금리 현상. 시중은행의 1년제 정기예금 금리는 연 4%대까지 떨어져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를 열었다. 은행권에서는 세계 60위권의 통합 국민은행을 비롯 우리금융그룹 신한지주회사 등의 출범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여진이 아직도 진행중이다. 주식시장은 전대미문의 '9.11 테러' 충격에 사상 최대의 폭락세를 기록했고 그 치유책으로 장기증권저축 상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 올 한해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을 짓눌러온 현대건설 및 하이닉스반도체는 연말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지원방안이 확정됐다. 한국경제신문사는 이같은 이슈들을 올해 국내 금융계의 10대 뉴스로 선정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 ----------------------------------------------------------------- (1) 실질 예금금리 마이너스 2001년은 금리 생활자들에게는 최악의 한 해였다. 경기부양을 위해 한국은행이 세차례에 걸쳐 콜금리를 연초 5.25%에서 4.5%까지 낮췄기 때문이다. 초저금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등 주요국가들에서 올해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 결과 은행의 1년제 정기예금 평균금리는 연초 7%대에서 7월 5%대로 떨어지더니 10월에는 4%대까지 추락했다. 4%대인 소비자 물가상승률과 이자소득세 등을 감안하면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이다. 생활비를 이자수입에 의존해온 퇴직자 등은 재테크 수단을 찾느라 극심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9월부터는 실세금리 하락세가 멈추고 조금씩 오르는 기미도 보이고 있어 금리생활자들의 형편이 올해보다는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힘을 얻고 있다. (2) 은행권 재편 국민.주택은행이 11월 통합 국민은행으로 출범하면서 국내 은행권은 대변혁을 맞았다. 자산 1백85조원 규모의 세계 60위권 초대형 은행이 나타나면서 '대형화'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사들은 4월 정부 주도아래 최초의 금융지주사인 우리금융그룹으로 재편됐다. 한빛 평화 경남 광주 등 4개 은행과 하나로종금 등이 우리금융의 우산 아래 들어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됐다. 신한은행도 증권 캐피탈 투신운용 등 계열사를 묶어 9월 민간부문의 첫 지주사인 신한금융지주회사로 거듭났다. 은행권에 불어닥친 이같은 대형화 바람은 중.소형 은행들의 짝짓기 움직임으로 이어지면서 새해들어 은행 구도의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3) 가계대출 급팽창 소액신용대출 부동산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이 급증했다. 기업금융을 꺼린 은행들이 낮은 금리를 앞세워 개인 여신을 집중 공략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집계 결과 지난 9월말 현재 가구당 부채는 1년 전에 비해 25%나 늘어난 4백40만원에 달했다. 대출전용카드를 무기로 한 할부금융사와 신용금고, 일본계 대금업체의 급전대출 등 2금융권에서도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연 2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5백만원 이하의 소액대출시장이 뜨거워지면서 진출 업체들도 속속 늘고 있다. 신한지주사가 BNP파리바와 손잡고 급전대출 전문사를 설립할 계획이고 씨티은행도 진출을 검토하고 있어 가계대출 시장은 내년에도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이와 관련, 가계대출의 무분별한 증대가 민간부문의 대규모 부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4) 신용카드 사상 최대 호황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용카드 업계는 큰 흑자를 내며 영업에서 호조를 보였다. 삼성 LG 국민 등 카드업계는 올해 총 2조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각 은행의 카드부문 실적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리볼빙 결제시스템을 도입하고 마일리지 혜택을 늘리는 등 유인책을 적극적으로 구사한 데다 세액공제 확대 등 제도적 뒷받침도 따른 덕분이다. 전문가들은 내년도 카드시장은 5백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현대캐피탈이 다이너스카드를 인수, 신용카드업에 신규 진출했고 일부 대기업들이 카드사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시장 쟁탈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5) 자동차보험료 자유화 8월부터 자동차보험료가 완전 자유화됐다. 보험사들이 각각 자율적으로 손해율을 적용해 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가 회사마다 달라지게 된 것이다. 자유화 조치로 새 차의 연간 보험료는 대체로 떨어진 반면 중고차나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젊은층의 가입자는 부담이 늘어났다. 또 동일한 조건이라도 보험사마다 보험료가 달라 여러 회사를 비교해 보고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필수적인 절차가 됐다. 그러나 보험료 자유화는 업체간 지나친 경쟁을 유발해 계약유치에 따른 특별이익(리베이트)의 성행 등 부작용을 불러와 시장질서가 문란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보험사의 사업비 지출도 자유화 이전보다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6) 현대건설.하이닉스 지원 확정 자금난을 겪어오던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채무조정안이 확정돼 위기를 한 고비 넘겼다. 현대건설은 채권단이 결의한 1조4천억원의 출자전환, 7천5백억원의 유상증자, 3년간 여신만기 연장 등의 지원책에 힘입어 회생의 길을 걷게 됐다. 채권단은 또 대출금리를 낮게 적용하고 수입신용장(LC) 개설로 8천5백만달러를 지원하는 등 현대건설의 수주활동을 뒷받침해 주기로 했다. 하이닉스도 6천5백억원 신규 지원, 3조1천억원의 출자전환 등 채무조정이 마무리 돼 유동성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이닉스는 최근 미국의 마이크론사와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면서 세계 D램업계 구도재편의 핵으로 떠올랐다. (7) 생보업계 역마진 위기 사상 초유의 저금리현상이 지속되면서 생명보험사들은 역마진 위기에 직면했다. 실세금리가 계속 떨어지면서 과거에 팔았던 고금리 확정상품의 부담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된 것이다. 이에 따라 생보사들은 보험료를 일제히 인상하고 조직을 축소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다. 보험업계 전체로는 2001 회계연도 상반기(4~9월)에만 3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삼성생명이 하반기에 4천명 이상의 보험모집인을 줄이는 등 생보업계는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감수해야 했다. 생보사의 퇴출도 잇따라 그룹의 지원을 받지 못한 현대생명이 연초 문을 닫았고 대우 몰락과 함께 위기를 맞았던 삼신생명도 퇴출되는 등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몰아쳤다. (8) 美 9.11 테러로 주가폭락 9월11일 뉴욕에서 일어난 테러사태는 전세계 증시를 마비시켰다. 이튿날 오전장을 쉬고 오후에 문을 연 서울 증시는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곤두박질쳤다. 종합주가지수는 개장후 단 2분만에 30분간 거래가 중단되는 서킷브레이커스가 발동되는 등 하룻동안 사상 최대치인 12.02%(64.97포인트)나 폭락했다. 하락 종목수는 하한가 6백21개를 포함해 8백44개로 연중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스닥지수도 11.59%(7.17 포인트) 떨어져 사상 최대 하락률을 보였다. 이날 하루에 주가하락으로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에서는 무려 27조원어치의 주식가치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한국 증시는 테러후 3일간 총 10.7% 추락해 아시아 5개국 가운데 하락률이 가장 컸다. (9) 장기증권저축 등장 '9.11 테러'로 충격에 빠진 증시를 살리기 위해 정부는 지난 10월 세액공제 혜택이 있는 장기증권저축을 내놓았다. 내년 3월말까지 한시적으로 판매하는 장기증권저축은 근로자주식저축보다 가입 대상과 세액공제 범위를 키운 상품이다. 가입액의 7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해야 하고 회전율(주식을 사고 파는 횟수)을 연 4백%로 제한한 탓에 판매 초기에는 실적이 기대에 못미쳤지만 연말정산을 앞두고 최근 가입액이 늘어나고 있다. 판매한지 2개월 가까이 지난 이달 14일 현재 실적은 2조원에 조금 못미치는 1조9천8백73억원으로 집계됐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경쟁상품인 근로자주식저축이 올 연말까지만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내년초 장기증권저축으로의 자금 유입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0) 현대투신-AIG 매각 MOU 체결 1년 이상 끌어오던 현대투신증권 현대증권 현대투신운용 등 현대계열 금융3사의 매각 협상이 8월 정부와 미국 AIG(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 컨소시엄이 MOU(양해각서)에 서명하면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양측은 총 2조원을 현대투신에 공동 투자하고 AIG측이 경영권을 갖는 방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MOU체결 이후 AIG측이 추가 요구안을 들고 나오면서 양측은 세부 조건에서 이견을 보이는 등 진통을 거듭했다. 결국 당초 매각 본계약을 맺기로 했던 시한인 11월말을 넘겨 협상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MOU 효력기한인 12월말까지 본계약을 맺도록 노력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연말까지 마무리될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