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엔 약세를 용인하겠다는 견해를 처음 밝힌 것을 계기로 국제외환시장의 큰 질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지난 95년 4월 이후 3년반 이상 지속됐던 역(逆)플라자체제가 다시 오는 것 아닌가 하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반면 엔저가 지속될 경우 그동안 잠복해 있던 통화마찰이 표면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 엔저 용인의 배경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이 경기침체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 엔저를 통해 미국과 국제사회의 협조를 얻어 경기를 회복시키는 방안이 유일하게 남은 상태다. 비록 구조개혁이란 단서를 달고 있으나 IMF와 미국도 엔저를 용인하는 의사를 표명한 것은 일본경제의 독특한 위상 때문이다. 일본경제가 세계총소득(GDP)의 약 9% 정도를 차지하고 세계경제의 완충역할을 담당해 왔기 때문에 일본경제가 회복되지 않으면 미국과 세계경제도 안정될 수 없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풀이된다. ◇ 역플라자체제 재현되나 =이번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 95년 4월 선진국간의 역플라자 합의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은 무역적자 부담이 작았고 국제적으로 멕시코 사태에 따라 폭락했던 달러화 가치가 세계경제 안정을 위해 어느 정도 회복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지금 시점에서 일본경제 안정을 위한 엔저는 별다른 이득이 없는 상태다. 당사자인 일본은 최근처럼 금리(콜금리)가 '제로'인 상태에서 엔저는 경쟁력 개선에 따른 수출증대 효과보다 일본내 자금이탈에 따른 경기침체 가능성(역자산효과: 일본내 자금이탈→주가하락→자산소득 감소→민간소비 감소→추가 경기침체)이 더 크기 때문이다. 미국도 엔저에 따라 추가적인 무역적자 부담을 져야 한다. 특히 일본경제에 '안항적(雁行的)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들은 엔저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국통화의 평가절하가 불가피해짐으로써 통화마찰까지 우려된다. ◇ 통화마찰 및 시장반응 =이미 일본과 중국간에는 통화마찰이 불거지고 있다. 19일 도쿄외환시장에서는 IMF의 엔저 용인 의사표명으로 엔·달러 환율이 1백28엔대로 오르자 경쟁력 약화를 우려한 중국이 엔화를 매입했다. 여타 아시아국가들도 자국통화의 가치 하락을 용인했다. 결국 이번에는 미국과 일본, IMF가 엔저를 용인한다 하더라도 역플라자 시대처럼 엔.달러 환율이 크게 상승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로이터사가 54개 국제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환율서베이 자료에서도 엔·달러 환율(기관 평균)이 당분간 1백30엔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