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서경석 LG투자증권 사장은 이런 의미에서 행복한 사람이다. 사회생활의 절반은 관료로, 나머지 절반은 경영인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 사장은 대학 재학중 행정고시에 합격(9회), 관료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초임사무관 시절 국세청에서 4년여를 보낸 것을 빼고는 재무부 세제실에서 잔뼈가 굵었다. 세제실 간접세과장 소득세제과장 조세정책과장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조세정책의 근간이 되는 부가가치세법 소득세법 조세감면규제법 등의 입법에 깊숙이 관여했다. 그러던 그가 20여년의 관료생활을 접고 경영인으로 변신한 것은 '모험'에 다름아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한창 승진가도를 달리던 40대 초반의 고위관료가 91년 기업으로 옮긴 것은 당시로선 대단한 '뉴스'거리였다. 그는 "역동적인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관료의 길을 접었다"고 말한다. 그는 '귀공자'처럼 LG그룹이란 큰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실물'을 챙겨 나갔다. 관료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경영노하우' 간에 접점이 있었기 때문. 서 사장은 세제통이다. 그게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금관리, 세무, 공정거래 관련 업무 등과 맥이 닿아 있었다. 서 사장은 "세제실은 '공평과세'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실물에 훤하지 않고선 견뎌내기 힘든 조직"이라고 회상한다. 기업의 자금흐름과 세무관리, 금융상품 구석구석까지 꿰뚫지 않은 채 조세정책을 수립하면 조세저항에 부딪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물을 모르는 직원은 선배들에게 매일 핀잔을 들어야 했다는 것. 여기서 차곡차곡 쌓아놓은 노하우가 뒷날 기업에서 훌륭하게 써먹힐 줄이야. 그는 LG그룹으로 옮긴 뒤 회장실 재무팀장을 맡아 그룹의 자금관리와 신규사업 기획 등에 깊숙이 참여한다. LG반도체의 상장과 PCS사업권을 딴게 그의 작품이다. 그가 CEO로서 위상을 재계에 각인시킨 것은 LG종금 사장 시절. 그는 투신운용 사장을 거쳐 98년 초 종금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당시는 혹독한 IMF 시절이었다. 종금은 부실자산을 잔뜩 끌어안고 있는 '골칫덩이'였다. 그에게 떨어진 밀명은 종금을 정상화시키는 것.그가 취임할 당시 LG종금의 총 자산은 6조원이었다. 2년 동안 그것을 3조원으로 줄여놨다. 그뒤 LG종금은 LG투자증권에 합병됐다. 서 사장은 지난 2월 LG투자증권으로 옮겨와 골칫덩이 종금문제를 '결자해지'한다. 종금부문의 여신자산에 대해 대손상각 3천8백17억원, 투자유가증권 처분 및 평가손실 1천7백95억원 등 총 5천6백12억원을 손실에 반영, 대부분의 잠재 부실요인을 제거했다. 그러나 그건 단지 출발이었을 뿐이다. 서 사장이 취임한 이후 LG증권은 눈부시게 변모하고 있다. 한때 업계 4∼5위로까지 처졌던 회사 위상을 다시 원상회복시키고 있다. 선두권으로 치솟아 오르고 있다. 지난해 5위까지 처졌던 선물·옵션무문이 2위로 수직상승했고, 4위였던 주식위탁부문도 3위로 올라섰다. 2001년 회계연도 상반기(4∼9월)중 영업이익과 경상이익이 전년동기보다 각각 1백62%와 1백% 증가한 1천1백16억원과 6백17억원을 기록했다. 증권사가 안고 있는 추가손실이랄 수 있는 미매각수익증권과 CBO후순위채권의 보유규모도 대형증권사 가운데 가장 적은 수준으로 끌어내려 놨다. 밀어내기식 경영을 지양하고 내실을 추구한 결과다. 서 사장의 이런 경영솜씨가 한때 '고인 물'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LG증권을 확 뒤바꿔 놓았다. 그의 경영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원칙을 지키고 사람을 키운다'는 것이다. 원칙을 훼손하면 당장에 조금의 이익을 볼 수 있어도 뒷날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서 사장은 "세제실에 근무할 때 선배들로부터 늘상 '세금은 고무풍선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누구에게 세금을 덜 매기면 더 내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균형감각을 지켜야 하며 원칙이 바로 서야 모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프로'가 될 수 있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서 사장은 "증권업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모든 자산"이라며 조직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는데 온 힘을 경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시스템을 선진화시키는데 무엇보다 주력하고 있다. 선장이 바뀌더라도 흔들림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조직이 강하다는 것. 예컨대 성과급도 개인보다는 조직에게 나눠 주는 체제를 갖춰 나가고 있다. 인센티브 시스템을 확 바꿨다. 종전에 개인 약정이 좋은 직원에게 포상하던 것을 '조직성과급'제로 바꿨다. 고객의 단타매매를 조장, 몇몇 직원이 '횡재'하는 것은 조직은 물론 투자자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이게 정착되면서 지점장들도 눈앞의 이익보다는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해졌다고 서 사장은 귀띔했다. 그는 직원들과의 눈높이를 맞춰 나가기 위해 발로 뛰는 '현장 경영'을 실천했다. 취임 이후 7개월 동안 2차례에 걸쳐 전국 1백20개 지점을 돌았다. 지점순방과 노사화합행사 등으로 서 사장이 발품을 판 거리가 약 5천5백㎞에 달한다. 서울∼부산간을 12번 왕복한 셈이다. 일선 직원들과의 가감없는 의사소통을 위해 투명하고 열린 경영을 실천하겠다는 서 사장의 경영관이 그대로 넘쳐난다. 서 사장은 앞으로 LG투자증권을 최고의 '투자은행'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외형상의 1등이 아니라 수익을 최고로 창출하는 경쟁력있는 증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그리고 "LG증권에 돈을 맡겼더니 믿음이 가고 돈을 불려 주더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도 지니고 있다. 겉으론 유하지만 속이 꽉찬 경영인인 서 사장이 LG증권을 어떤 모습으로 바꿔 놓을지 주목된다. 남궁덕 기자 nkduk@hankyung.com ----------------------------------------------------------------- < 약력 > 1947년 부산 출생 경남고.서울대 법과대 졸업 70년 행정고시 9회 합격 71~75년 국세청 사무관 81~89년 재무부 간접세.소득세.조제정책과장 89년 국세심판소 상임심판관 90년 주 일본대사관 재무관 91년 LG그룹 회장실 재경 상임고문 92~95년 LG그룹 회장실 재무팀장.전략사업개발단장 96년 LG투자신탁운용 사장 98년 LG종금 사장 2000년 극동도시가스 사장 2001년 LG투자증권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