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中閑談] (16) '우룡 스님(울산 학성선원 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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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가 "큰스님"이라고 하거나 3배를 하면 차나 마시고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냥 "아무개 스님"하면 되지 큰스님은 뭐고 3배는 또 뭡니까" 아하! 그제서야 의문이 풀렸다.
지난 7월말,찾아뵙고 싶다며 전화했을 때 노장(老長)이 왜 매정하게 퇴짜를 놓았는지를.노장은 그 때 "여긴 큰스님이 없고 서울에 많으니 거기서 찾아보세요.
내려 오지 마세요"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큰스님"이라고 부른 내게 잘못이 있었던 것이다.
경주 시내 중심가에서 경남 언양으로 빠지는 35번 국도변 남산 자락의 함월사.포석정을 지나 삼릉에서 1백여m쯤 떨어진 이 곳에서 그 노장을 만났다.
울산 학성선원 조실 우룡(69) 스님이다.
마침 주말이라 찾아온 경남 양산의 내원사 비구니 스님들과 이병인 밀양대 환경공학과 교수 등도 자리를 함께 해 주말 한담을 즐겼다.
우룡 스님은 잿빛 티셔츠에 승복 바지 차림이다.
야박하게(?) 전화를 끊었던 것과는 달리 소박하고 소탈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다.
함월사 주지 스님이 차를 우리는 옆에서 가부좌와 꿇어앉기를 번갈아 해가며 객들과 문답을 나눴다.
소탈한 모습과 달리 목소리는 쩌렁쩌렁하다.
"마음이라는 게 모양은 없지만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스님이건 속인이건 마음가짐을 조심해야 하는데,근래에 와선 스님들이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질이 너무 흔하고 대접받는 데 익숙해지다보니 모두가 자칭 부처가 돼서 남의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아요"
세속의 중생들을 향한 경책이 아니라 승가에 대한 자성(自省)과 걱정이 먼저다.
화두선만 강조하다보니 경전이나 의식을 가벼이 여기고 선승이 아니면 얕잡아 보는 나쁜 풍조가 만연했다는 것.그러다 보니 어디가 바른 길인지 분간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불교에서 진리를 보는 3가지 기준으로 원성실성(圓性實性) 변계성(遍計性·편계성) 의타성(依他性)이라는 게 있어요.
원성실성은 사물의 진실한 본성을 보는 것이고 의타성은 인연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보는 것이며 변계성은 실체가 아닌 것을 실체라고 잘못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밤길을 가다 새끼줄을 봤을 때 이를 뱀으로 착각하고 무서워한다면 변계성이고,뱀과 비슷하지만 새끼줄인 것을 안다면 의타성이며,짚이 새끼줄의 형상을 하고 있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원성실성이지요"
우룡 스님은 "모름지기 원성실성을 지녀야 하는데 대중들은 늘 변계성에서 허우적거린다"면서 "눈을 똑바로 떠야 한다"고 경책했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국회의원이든 보통 사람이든 말이나 마음가짐이 너무나 살벌해서 복 털기 경쟁을 하는 것 같아요.
복 짓기 경쟁을 해도 시원찮을텐데 참 걱정입니다.
복은 돈 갖다 주고 물건 주는 데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마음가짐 하나,행동 하나,말 한 마디가 복을 짓습니다"
어떻게 하면 복을 지을 수 있을까.
노장은 "우리 집이라는 도량에서 내 가족이라는 부처님을 잘 섬겨야 복이 싹튼다"고 단언한다.
가족 앞에서 내 마음과 말과 행동을 바꿔 보라는 얘기다.
하루 한 번이라도 가족들이 서로 고맙다,미안하다며 참회하고 축원하는 것이 참된 예불이요 복 짓는 방법이라고 노장은 거듭 강조한다.
"죽은 뒤에 극락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 앞에 지옥과 극락이 있습니다.
부모·자식 간에 살벌한 대화를 하고,서로 삿대질하며 옳다 그르다 싸운다면 그게 바로 지옥입니다.
그러나 가족끼리 서로 웃으며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한다면 그 집안이 바로 극락이지요"
노장은 "인과의 법칙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면서 "내가 만든 원인에 따라 복락과 칼날의 길이 갈라진다"고 했다.
사람마다 불성(佛性)이라는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개발하지 않으면 결실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장이 "인생의 가계부를 잘 쓰라"고 당부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돈이 들어 오고 나가는 것보다 인생 전체를 잘 계산해야 합니다.
인생 가계부의 수입은 복을 짓는 일이요,지출은 재앙을 만드는 것이니 복을 적게 짓고 재앙을 많이 만들면 적자 인생인 것이지요.
주변의 고마움에 감사할 줄 모르고 그들을 위해 베풀지 않으면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 됩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중학교에 다니다 해방과 함께 귀국한 우룡 스님은 1947년 해인사에서 고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경(經)과 선(禪)을 함께 배웠다.
화엄사,법주사,범어사 강원 강사를 역임하고 수덕사,직지사,쌍계사,통도사 등의 여러 선원에서 수행하며 선교일여(禪敎一如)를 이룬 것도 그런 소이다.
우룡 스님은 "함부로 말이 튀어 나오는 걸 조심하고,마음이 꿈틀꿈틀하는 것을 조심하고,행동이 빼쭉빼쭉하는 걸 조심하면 거기에 다 복이 있다"고 했다.
이야기 도중에 신도가 데려온 듯한 어린 아이 하나가 '스님'하며 노장의 품에 덥석 안겨 장난을 치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객들은 자리를 뜨고 천진불 둘만 그곳에 남았다.
경주=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