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막판까지 한국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한 3대 쟁점은 농업시장 조기 개방과 반덤핑협정 개정, 수산보조금 감축 문제였다. 이 가운데 농업과 수산보조금 분야는 한국에 불리한 WTO 일반이사회 초안대로 내용이 굳어지는 분위기다. 반덤핑협정은 미국의 일부 양보를 토대로 협정 개정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기존 협정의 원칙과 테두리를 완전히 바꾸긴 어려울 전망이다. 한마디로 현재로선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 농업시장 개방 =농산물 수출국 모임인 호주 캐나다 등의 케언스그룹에 사실상 완패했다. WTO가 이번 각료회의를 통해 가닥을 잡은 농업 협상의 핵심축은 △시장접근의 실질적(substantial) 개선 △수출 보조의 단계적 폐지 △국내 보조의 실질적 감축 등 세 가지다. 한국의 이해와 직결되는 시장접근 및 국내 보조에서는 케언스그룹이 밀어붙인 초안 내용이 수정없이 통과될 것으로 보여 대폭적인 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 또 한국이 주장한 식량안보 등 비교역적 관심사항(NTC) 문제가 핵심 협상사항이 아닌 단순 고려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어 농업 관련 특혜조치와 개도국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한국이 농업 협상에서 실패한 것은 뉴라운드 출범에 총력을 기울인 미국이 케언스그룹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과 입장이 같았던 일본과 유럽연합(EU)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덜한 형편이다. 특히 일본이 한·일 공조를 깨고 WTO가 제시한 초안 내용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판세가 결정적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다. ◇ 반덤핑협정 개정 =이번 각료회의에서 한국의 주장이 관철될 것으로 보이는 유일한 분야이지만 절반의 성공에 불과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미국은 협정 개정 협상에 합의해주는 조건으로 각료 선언문에 '기존 WTO 협정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구를 삽입토록 요구하고 있다. 개정 협상을 벌이더라도 잃을게 없는, 이른바 '물타기 작전'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 등 동맹그룹이 제출한 협정 개정안에 대해 미국이 기존 협정에 위배된다고 버틸 경우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어진다. 더욱이 최근 반덤핑 관세 부과 등의 수입규제 조치를 보호무역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개도국들이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게 되면 개정 협상 자체가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 수산보조금 감축 =초기에 한·일 양국이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혔으나 다른 WTO 회원국들에 먹혀들지 않았다. 수적으로 훨씬 많은 수산물 수출국 동맹그룹에 밀린 것. 여기에다 이 문제가 반덤핑협정 개정에 반대하는 미국과 환경문제 의제화를 주장하는 EU 등과 이해관계에 얽혀들면서 한.일 양국의 주장이 오간데 없이 됐다. 이에 따라 한국은 앞으로 WTO가 규정한 금지대상 보조금 성격이 강한 2천억∼3천억원 규모의 영어(營漁)자금 융자금을 집행하지 못하게 되는 등 직격탄을 맞을 공산이 커졌다. 연간 5천억원 규모의 선박 면세유도 수산물 동맹그룹이 문제삼을 가능성이 높다. 도하(카타르)=정한영 특파원 c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