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하락 기조가 완연하다. 미국 테러 사태 이후 오름세를 보인 환율은 지난달 4일 1,313.10원을 기점으로 서서히 미끄러지는 장세를 보이더니 8주만에 1,280원대로 진입했다. 테러 사태 이전의 수준으로 복귀한 것. 위아래 제한된 박스권 범위에서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던 외환시장은 공급 우위 장세의 지속을 반영하듯 아래쪽으로 눈길을 던지고 있다. 이번 주 들어 환율의 바닥 확인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는 상황. 대내외적으로 불안감이 잠복해 있는 상태에서 수급요인에 의한 움직임이 뚜렷하다. ◆ 고점 확인, 멀어진 1,300원대 = 테러 사태이후 악화가 불가피하게 여겨지던 세계 경제 및 국내 경제가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는 인식을 토대로 내년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있다. 바닥에 대한 공방이 펼쳐지던 와중에서 테러사태는 바닥에 다다랐다는 확신을 심어준 셈. 이에 따라 국내 경제도 성장 전망의 근거가 불확실한 가운데 9월 산업활동이나 경제성장률이 테러사태이후의 우려 수준보다 나아졌다. 환율도 상승을 주도하던 역외세력이 테러사태 이후 매수 여력이 서서히 떨어지는 감을 감지했다. 특히 1,300원을 넘기만 하면 매도에 눈을 켜는 참가자들로 인해 지난달 하순이후 1,300원은 멀어진 고지가 됐다. ◆ 하향 추세 인정해야 할 듯 = 지난달 4일이후 전반적으로 내림세를 보이면서 환율의 박스권 범위도 차츰 저점을 내리는 양상을 보였다. 이달 들어서도 '1,295∼1,300원'의 범위가 지켜지는 듯한 흐름속에 1,295원을 쉽게 뚫지 못하던 환율은 7일 외국인 주식순매수 부담 등을 이유로 '1,290∼1,295원'으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그러나 8일 외환시장은 당초 예상과 달리 1,280원대로 급속하게 진입하는 풍경을 연출했다. 조심스레 1,290원에 대한 지지력 확인에 나섰던 환율은 달러매도를 위한 핑계를 찾던 거래자들에 의해 8주만에 1,280원대로 진입했다. 장중 지난 9월 13일 1,286.50원을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내려선 것. 무엇보다 지난달 초부터 시작된 외국인의 지속적인 주식순매수가 환율 하락의 지대한 공신이었다. 지난달부터 이날까지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을 합해 단 이틀을 제외하고는 순매수 기조를 이었다. 이날도 1,000억원을 넘어섬으로써 최근 사흘동안 외국인은 5,000억원에 육박하는 매수우위를 보였다. 달러 공급 요인의 축적으로 인해 시장은 강한 압박감을 받고 있는 상태. 또 가득이나 재료가 없던 시장에 금융통화위원회가 콜금리를 유지하면서 '공급우위 기조의 지속'을 언급한 것도 이에 가세했다는 지적이 있다. 달러되팔기(롱스탑)이 적극적으로 나왔던 것.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지속적으로 공급우위 장세가 된데다 손절매도, 역외매도까지 가세했다"며 "누적된 물량을 이 기회에 처분하겠다는 의사가 강해 달러되팔기가 반복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하루만에 1,290원이 지지선에서 저항선으로 바뀌었고 외국인 주식자금의 공급이 이어지면 1,280원에 대한 테스트도 이뤄질 수 있다"며 "그러나 이 정도 수준에서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1,280원까지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하방경직성에 기대 달러매수에 나섰던 세력들도 심리적인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하방경직성을 염두에 두고 달러매수초과(롱) 포지션 구축에 나서던 세력들도 금통위의 언급이 달러매도를 위한 길을 터줬다는 얘기가 있다"며 "반등할만한 소재가 없고 현재는 하락 추세로 봐야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같은 공급우위의 장세가 얼마나 시장에 힘을 발휘할 지 여부는 미지수다. 금통위의 언급은 외국인 주식순매수 등 단기적인 수급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인데다 대외변수에 대한 불안감은 언제 대내요인을 짓누를 지 예측불허다. 실질적으로 수급 상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상수지도 점차 줄어들고 외국인 직접투자(FDI)자금 유입도 원활치 않은 상태란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