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이 진통 끝에 신규 자금지원을 포함한 정상화 방안을 확정함에 따라 하이닉스는 일단 유동성 위기에선 탈출할 수 있게 됐다. 내년까지는 버틸 수 있는 현금을 확보한데다 앞으로 3년간은 빚 갚을 부담에서도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권단 지원이 하이닉스의 회생을 전적으로 보장하는 건 아니다. 하이닉스가 추진중인 자산매각 등 자구계획이 제대로 이행되고 반도체 값도 회복돼야 정상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채권단 지원으로 회생의 발판은 마련했지만 하이닉스가 완전 정상화되기 까지는 여전히 변수가 많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내년까진 버틸 수 있어=채권단은 정상화 방안에 따라 내달 10일부터 하이닉스에 신규 대출을 해줄 예정이다. 신규 지원에 불참하는 은행들을 빼고 외환 한빛 조흥은행 등이 약 6천5백억원 정도를 대출해줄 계획.하이닉스는 이 돈중 5천억원을 시설투자 자금으로 쓰게 된다. 이로써 하이닉스는 최악의 자금난을 모면할 수 있게 됐다. 또 3조원 이상의 부채 출자전환과 채무탕감으로 연간 1조원에 달하는 이자비용이 내년부턴 5천8백억원으로 줄어 자금 숨통이 트이게 된다. 채권단은 이 정도 지원이면 하이닉스가 적어도 내년말까지는 돈 걱정을 않고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단 분석으론 올 4.4분기중 7천8백억원,내년 상반기엔 7천2백80억원,하반기엔 2천8백70억원의 자금 여유가 생긴다. 만약 채권단 지원이 없다면 하이닉스는 내년중 5조7천억원 이상 자금이 모자랄 판이었다. 채권단 관계자는 "반도체 값이 내년말까지 현재의 바닥수준을 유지하더라도 하이닉스는 자금난을 겪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시급한 설비투자에 나서 기술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자구계획 잘 돼야=하이닉스는 내년말까지 자산매각 등 자구를 통해 총 2조6천억원을 확보할 계획.채권단 지원에 발맞춰 스스로도 제 살 길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그같은 자구계획이 얼마나 실행되느냐도 하이닉스의 회생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일부 반도체 공장의 중국 매각이나 전략적 제휴를 통한 자금 유치가 성사될지 여부가 관심사다. 채권단 관계자는 "하이닉스의 자구가 절박하면 절박할 수록 설비매각 등이 결코 쉽진 않을 것"이라며 "아쉬울 게 없는 중국측에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시간을 끌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하이닉스의 자구계획이 1백% 달성될 것이라고 낙관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채권단은 회사가 제시한 2조6천억원의 자구계획중 1조6천5백억원만 성사된다는 보수적인 전제로 자금계획을 짰다. 그러나 채권단은 하이닉스의 성실한 자구이행이 회생의 관건인 만큼 회사와 채권단이 공동으로 구조조정특별팀을 만들어 자산매각 등을 강력히 추진할 계획이다. 또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5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성공할지도 문제다. 만약 유상증자가 안되면 하이닉스는 내년 하반기중 2천9백억원 정도의 자금부족이 생긴다는 게 채권단 전망이다. 반도체 값이 변수=현재 바닥을 헤매고 있는 반도체 값이 언제 반등할지는 하이닉스 정상화를 좌우할 가장 결정적인 변수다. 채권단은 내년말까지는 반도체 값이 64메가D램 환산기준가로 개당 1달러 수준을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지원계획을 마련했다. 또 오는 2003년과 2004년엔 각각 반도체 값이 1.5달러와 1.7달러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만약 채권단 예상과 달리 내년중 반도체 값이 더 떨어지거나,2003년부터 반등하지 못한다면 하이닉스는 또다시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전병서 대우증권 조사부장은 "반도체 값은 지금이 바닥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라며 "특히 하이닉스가 자금난에서 벗어나 더 이상 싼 값에 재고를 처분하지 않는다면 아시아 시장에서의 반도체 값도 어느정도는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세계 반도체 시장의 본격적인 회복이 언제 찾아올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워 하이닉스의 확실한 회생을 현재로선 속단할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