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우그룹 사장단 회의 장면을 보여드린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대우그룹의 기업지배구조가 오늘의 주제다. 대우그룹 전.현직 임원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김우중 회장의 경영스타일에 적지않은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는 바로 그 것. 경영은 있으되 의사결정 시스템이 부재했고 지시는 있으되 토론은 없었던 것이 대우의 치명적 약점이었다. 과속과 질주, 진군 과정에서는 일사분란한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했지만 일단 전선이 무너지면서 곧바로 극심한 혼란으로 빠져든 운명의 함정이요 필연의 굴레였다. 논하기로 따지면 끝이 없지만 다만 하나의 풍경화를 보이는 것으로 지배구조 문제에 가름한다. ------------------------------------------------------------------ 지난 98년7월9일 오전 8시, 경기도 용인에 있는 고등기술연구원 국제회의실 A홀. 사장단 30여명이 참석한 대우 최고경영자협의회, 이른바 사장단 회의가 열렸다. 대우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기 직전 시점. 먼저 당시 대우경제연구소 이한구 소장이 하반기 경제전망을 발표했다. 김 회장은 경제가 불투명한 상황인 점을 감안해 사장들에게 위기감을 심어주기 위해 경제전망을 첫 주제로 올렸다. 김 회장의 불만에 가득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김 회장 : 한마디로 얘기해봐. 나는 무슨 얘긴지 못 알아듣겠어. 이 소장 : 한마디로 얘기할 정도로 상황이 간단치 않습니다. 김 회장 : 그럼 얘기하지 말아야지. 이 소장 : 시나리오대로라면 마이너스 5% 성장이 불가피합니다. 내년 또한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큽니다. 김 회장 : 하반기에는 수출이 많이 준다고 보나. 이 소장 : 수출증가율 제로 정도면 다행입니다. 작년 정도의 경제규모로 돌아가는데 2001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봅니다. 규모도 규모지만 구조가 많이 바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초점을 맞춰 전략을 잘 짜야 할 것입니다. 김 회장 : 어떻게 바뀌는데. 이 소장의 설명이 뒤따랐고 이어서 (주)대우 장병주 사장이 수출 실적 및 하반기 전망을 보고했다. 김욱한 구조조정본부 사장이 마이크를 이어받아 계열사들의 수입규모 등 예상수치를 발표했다. 김 회장이 짜증을 내면서 김 사장에게 따져 물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뭐야. 지금 얘기한 게" 한마디로 얘기하라는 김 회장의 주문에 회의 참석자 모두가 고개를 더욱 파묻었다. 누구랄 것도 없었다. 김 회장과 맞부딪쳐 무사한 사람이 드물었다. 이번에는 대우자동차판매 정주호 사장 순서였다. 정 사장 : 자동차 판매실적 자료가 자꾸 유출돼서 파워포인트로 작성했는데 잘 보이지 않아 제가 큰 소리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 회장 : 안보이는 자료를 왜 비치는 거야. 무슨 일들을 그렇게 하고 있어. 정 사장 : 죄송합니다. 김 회장 : 아침부터 사장들이 이렇게 하는데 이게 도대체 뭐야. 일들을 도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김 회장은 주요 사안에 대한 보고를 받은 다음 전자부문 수출부진을 질책했다. 김 회장 : 전자 수출이 왜 안느는 거야. 박창병 부사장(전주범 사장 대리참석) : 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 늘고 있습니다. 김 회장 : 여기 상반기 줄었잖아. 작년에 8억2천6백만달러에서 금년 7억1천2백달러니까. 이유가 뭐야. 이유도 모르면서 앉아서 관리하고 있으니까 큰 일 아니야. 김 회장은 이어 정주호 사장을 보면서 6월 자동차 등록실적이 나왔냐고 물었다. 정 사장 : 11일에 나옵니다. 김 회장 : 아침에 광고보니까 아토스가 상반기에 가장 많이 팔렸다고 나오던데. 정 사장 : 우리는 4월부터 팔았고 거기(현대자동차)는 1월부터 팔았는데 지금 대수는 저희가 더 많습니다. 김 회장 : 그럼, 3개월 실적만으로는 우리가 더 많을 것 아니야. 정 사장 : 예. 그렇습니다. 김 회장 : 그러면 그런거 가지고 광고로 되받아 쳐서 약을 올려야지. 그렇게 이슈가 돼야 얘기가 자꾸 되는거지. 자꾸 이슈가 돼서 현대하고 비슷하게 간다는 것만 인식시켜도 판매에 도움이 된단 말야. 다음 해봐. 구조조정본부 권오택 인사담당 상무가 연봉제 추진 일정을 설명했다. 김 회장 : 연봉제는 말이야. 증권은 했는데 왜 딴 데는 안되는 거야. 왜 이렇게 복잡해. 한번 얘기를 해 봐. 권 상무 : 직원들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어떻게 반영하느냐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김 회장 : 그러니까 그런 것은 실시하면서 하는 거지. 어떻게 처음부터 정확하게 만들고 할 수 있느냐 이거야. 일을 하려고 하는 거야, 안 하려고 하는 거야. 추 사장, 중공업은 어떻게 하고 있어? 추호석 대우중공업 사장 : 과장급 이상부터 시행을 하려고 했습니다. 금년에 준비를 해서…. 김 회장 : 글쎄 과장 이상이고 뭐고. 빨리 시작하면 되잖아. 직원들도 제대로 못다루면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야. (주)대우는 왜 못하고 있는거야. 장병주 (주)대우 사장 : 도입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10여분 동안 정신무장 강의를 한 후 이번에는 자금 얘기를 꺼냈다. 김 회장은 벌써 오래전부터 이상기류를 감지한 듯했다. "앞으로 각 사가 자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보고 싶다 이거야. 일단 사채다 CP(기업어음)다 하는 것을 다 합쳐서 이자율 얼마에 몇 년짜리인지 코스트를 따져서. 각 사 사장들이 작년 상반기에 비해 이자를 얼마나 더 물고 있는지 내주중에 보고 해봐. 돈이 남았는지 안 남았는지 내가 한번 봐야겠어. 내주중에 자금담당하고 사장하고 같이 보고하라구" 김 사장은 회의 내내 정확한 보고를 당부했다. 김 회장의 의중을 잘 알고 있는 대우 사장들은 사소한 사안도 김 회장에게 보고하려고 했다. 그래서 힐튼호텔 23층 펜트하우스에는 새벽 2시까지 결재를 받으려고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곤 했다. 오전 10시까지로 예정된 회의 시간은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공정거래위의 대우에 대한 조사상황을 체크한 다음 김 회장의 마무리 '훈시'가 나왔다. "공정위에서 내부거래 갖고 문제 삼으면 합병하면 그만이다 이거예요. 합병하면 내부거래가 아니잖아. 내부거래가 무엇이 잘못이냐 이거야.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고 안에서 왔다갔다 하는데 왜 그러는지 나는 이해를 못하겠다고. 합병하면 내부거래 없어지잖아. 그런 것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오리온전기 한국초자 대우전자 이것을 내부거래라고 뭐라고 하면 다 합쳐버리면 되지 않냐 이거지" 사장들은 침묵을 지켰다. [ 특별취재팀=정규재 경제부장(팀장) 오형규 이익원 최명수 조일훈 김용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