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불법과 편법으로 얼룩진 이들 시세조종사건은 주식시장을 "그로기"상태로 몰고갔다. 특히 이들 대형사건이 불과 1년사이에 잇따라 터졌다는 사실은 "주식 자본주의"를 위한 한국의 투자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증시위축을 우려해 주가조작을 방치해온 정부당국과 혐의가 분명한 주가조작에 속수무책인 증권거래소 등 관리기관.약정을 위해 허수주문을 알고도 모른채 하는 증권사."머니게임"에 혈안이 된 상장(등록)회사나 일반 투자자 등 시장참가자 누구도 한국증시를 황폐화시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우증권 투자정보팀 관계자는 "시세조종과 내부자거래 등 불공정거래가 판을 치다보니 "공정한 룰에 의한 공평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시장의 공감대가 없다"고 지적한다. 이렇다보니 개인이 굴리는 전체 금융자산중 주식투자비중은 미국 일본과 비교할때 미미한 수준이다. 금융감독원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6월말현재 개인의 금융자산중 주식투자비중은 7.4%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간접투자를 합친 개인의 주식투자비율이 50%를 웃돌고 있다. 늑장대응과 "솜방망이"처벌=당국은 "이용호게이트"를 비롯한 각종 주가조작사건 에 대한 혐의를 잡고도 6개월~1년후에야 조사에 착수하는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 이같은 늑장대응은 투자자보호는 고사하고 증시에 일파만파의 충격을 던지며 투자자에게 이중 삼중의 피해를 안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시세조종 등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도 솜밤방이에 그치기 일쑤다. 지난해 문제가 됐던 삼부파이낸스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 대표이사 등은 재무제표 허위표시 등으로 투자자를 현혹해 90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 그러나 법원은 회사와 대표이사에게 각각 3천만원과 2천만원의 벌금형만을 선고했다. 코스닥증권시장(주) 관계자는 "미국은 시세조종자의 부당이익을 모두 토해내도록 하고 같은 금액의 벌금형을 선고한다"며 "가벼운 처벌수위는 주가조작을 양산하는 토양"이라고 비난했다. 실제로 시세조종과 미공개정보이용 등 "작전"사례는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말 현재까지 85건의 시세조종 등 혐의를 포착해 검찰에 고발조치 및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 99년과 2000년에는 각각 85건과 94건의 시세조종혐의가 검찰에 통보됐었다. 감독허점을 노리는 머니게임=상장(등록)회사들은 기업공개과정에서부터 불공정거래에 노출된다. 증권사의 과당경쟁으로 자격미달의 회사가 상장되고 대주주와 결탁한 창투사 컨설팅사가 유통시장에서 주가를 떠받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증권사의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도 위험수위다. 증권사간 "수수료 꺾기"등 부당거래는 관행으로 치부되고 등록과 회사채발행을 맡은 주간증권사가 버젓이 해당회사의 "매수"리포트를 내놓기도 한다. 증권회사 브로커나 투자상담사들이 소위 작전의 배후나 "주포"로 공공연히 활약하고 있지만 약정고에 목맨 증권사들은 이를 알고도 그대로 방치하는 게 현실이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개인투자자도 다양한 방법으로 주가조작에 가세하고 있다. 허수주문 등에 의한 시세조종문제가 불거지자 한때 증권당국이 매매횟수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했을 정도다. 상장사와 투자자가 머니게임에 혈안이 되다보니 건전한 투자문화도 실종됐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테러에 가까운 투자자의 항의에 소신있는 분석자료를 내놓기를 꺼린다. 증권사의 투자의견중 단기매수는 사실상 "중립"이고 중립은 "매도"라는 우수갯소리가 전해지고 있을 정도다. 대책은 없나=불공정행위를 막기위해서는 증권거래소와 증권업협회에 자율규제기관으로서의 시장감시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당국이 금융감독위원회에 준사법적 기능을 부여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증권거래소 김정수 감리총괄팀장은 최근 "시세조종규제의 이론과 실제"라는 보고서에서 "사법부는 증권시장과 투자자보호의 마지막 보루"라며 "시세조종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사범에 대한 철저한 법집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시세조종 유형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어 불공정행위에 대한 포괄적 규제조항을 신설해야 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밖에 형사고발이 적절치 않은 불공정행위에 대해서는 민사제재금 제도를 도입,부당이득금을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