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살려야 나라가 산다] 제2부 : (8) '공정위 재편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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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고, 부당한 공동행위 및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제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장하고 소비자를 보호함과 아울러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설립 이유를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조다.
하지만 공정위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공정위가 '자유로운 경쟁을 막고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기존 공정위를 해체하고 새로운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주장마저 제기되는 형국이다.
왜일까.
4대 그룹계열인 A기업 임원은 "'우물안 개구리'식 사고에 빠진 공정위에 과도한 권한이 부여돼, 해서는 안될 것까지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정한 경쟁을 촉진해야할 공정위가 엉뚱하게 재벌 개혁의 선봉장으로 나서 불합리한 제재를 남발하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우리보다 수십배나 큰 기업들과 정면 대결을 펼쳐야 하는 글로벌 경쟁시대가 도래했음에도 공정위는 고만고만한 국내 기업만을 대상으로 '더 크지 말라'며 기업의 절대규모를 통제하는 시대착오적인 규제를 고수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학계와 다른 정부 부처도 이런 점에서 규제 완화의 필요성에 적극 동의하고 있다.
주주와 채권단의 경영 감시가 강화됐다는 점도 규제 완화 시기가 왔음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만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섣불리 규제를 완화하면 '문어발 확장'이라는 재벌의 고질병이 재발해 또 다시 IMF(국제통화기금) 체제로 들어설 수 있다"며 되레 겁을 주고 있다.
기업은 악(惡)이며 공정위는 선(善)이라는 등식을 전면에 내세운 형국이다.
경제계는 공정위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수익이 나지 않을 사업에 투자할 기업도 없겠지만 이제는 주가가 떨어질까봐 하고 싶어도 못한다. 요즘 시대에 계열사를 무리하게 도와준다거나 쓸데없는 사업을 벌이면 주주와 은행이 가만히 있겠는가. 그래도 못미덥다면 회계.공시제도를 강화하고 금융시스템이 작동하는데 힘을 쏟아 해결해야 할 것이다"(B기업 임원)
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예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막고, 국민 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한다'는 공정위의 존립 근거에 의문을 제기한다.
조 연구위원은 "공정위가 시장의 균형 여부를 판단해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은 대기업을 약화시키고 중소기업을 도와주겠다는 의미"라며 "이는 공정한 '심판' 역할만 해야 할 경쟁당국이 '코치나 감독' 역할까지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는 "시장경제는 복잡·미묘해 정부의 통제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적절한 사업구조가 어떤 것이고, 오너 경영이 비효율적인지 여부를 정부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공정위가 설립 이유로 내세운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이 실효성보다 폐해가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난 만큼 이제 '경쟁 촉진'을 주로 하는 기관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익명을 요구한 고위 공무원은 "공정위는 경제력집중 관련 법령을 털어내고, 담합 심사 등 순수 경쟁촉진 업무와 다른 정부 부처 법령의 경쟁 제한성 여부를 심사하는 기관으로 축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위가 '경쟁촉진위원회'로 재편돼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잡다한' 불공정 행위 조사에서 벗어나 심결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공정위에 공식 접수된 사건은 무려 6천3백99건이었고 이중 1천5백97건이 처리됐다.
이 모든 업무를 4백여명의 직원으로 처리하다 보니 정작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대규모 기업결합이나 담합, 독과점 행위를 조사.심결하는데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정위 내부에서 조차 이같은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사건처리 건수를 대폭 줄이고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이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을 정도다.
순수 경쟁정책에만 전념하는 미국 공정위의 경우 연간 사건처리 건수가 1백건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공정거래 제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공정위 체제의 개편은 불가피하다는 지적들이다.
다만 재벌규제 완화에 대한 일부의 우려가 남아 있고, 제도적 보완장치도 필요한 사안인 만큼 금융감독위원회 등 관련부처와의 역할 재조정과 맞물려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민 교수는 "정부는 기업을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아 모진 구조조정과 개혁을 강요했다. 하지만 정부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도 개혁하는데 매우 인색하다. 부도덕한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정부의 자세전환을 촉구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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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이희주 산업부장(팀장) 박주병 손희식 차병석 김준현 김홍열 김용준 오상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