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대한 테러와 이에 대응한 전쟁을 계기로 세계 각국들은 앞으로 새롭게 예상되는 세계경제질서의 변화에 주목하는 한편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경제질서는 어떻게 변할까. 무엇보다 세계 각국에서는 그동안 마치 신드롬에 젖었던 것처럼 추진해 왔던 세계화(globalization)에 대한 반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90년대 이후 '세계화·자유무역·시장경제'로 상징되는 세계경제질서에서 나타난 가장 큰 문제는 지역별·국가별·계층별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킨 점이다. 지금처럼 개도국과 소외계층이 방치된 상태에서는 반(反)세계화 물결이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모색되는 새로운 세계질서에서는 이들 소외된 국가와 계층들의 이익을 어떻게 수용해서 인류공영의 기반을 마련하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진국의 위상은 축소되고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조정역할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세계 각국간의 공조체제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번과 같은 예기치 못한 사건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금리인하,재정지출 확대와 같은 정책협조뿐 아니라 테러행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긴밀한 감시체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금융을 비롯한 기존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백업구조를 어떻게 구축하느냐도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차원에서 핵심과제가 되고 있다. 이번 미국의 태러사태 직후 우려됐던 금융공황을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철저한 백업시스템을 갖춰 놓았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 등 선진국들의 금융인프라는 비교적 잘 갖춰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개도국들이다. 최근처럼 국제금융시장이 단일화돼 있는 시대에서는 개도국도 선진국과 맞먹는 수준의 금융인프라를 갖추지 못할 경우 일종의 '전염(傳染)효과'로 인해 국제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개도국들의 금융인프라 완비를 위해서는 국가신용등급 평가때 백업시스템 확보여부를 평가요소에 강제로 삽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선진국들이 공공재(public goods) 차원에서 개도국들의 백업시스템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을 일정부분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조세회피지역(tax-haven area)에 대한 과세방안도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구상에서 테러집단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보복 조치보다는 테러집단에 유입되는 자금줄을 차단하는 방법이 더 효율적이다. 최근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해 부시 미국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발동한 바 있고 서방선진 7개국가(G7)들도 공조방안을 마련했다. 테러집단에 들어가는 자금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이들 집단이 투자자금을 회수할 때 돈세탁 창구로 활용하는 조세회피지역을 규제하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그동안 간헐적으로 논의돼 왔던 조세회피지역에 대한 과세방안이 다시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환율제도로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50주년을 맞아 검토됐던 '목표환율대(target zone)' 도입논의가 부활될 가능성도 크다. 특히 개도국을 중심으로 이번과 같은 돌발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얼마나 더 쌓을 것인가 하는 이른바 '신(新)외환보유고' 적정규모 논쟁과 제2선 자금(back-up facility) 확보차원에서 인접국간의 통화스와프 협정체결 문제가 크게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권력과 관련해서는 이번 테러사태 이후 정부의 시장개입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감이 크게 줄어든 측면이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작은 정부(small government)'보다는 '큰 정부(big government)'를 지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스럽게 경기부양수단으로 통화정책보다는 재정정책이 선호되면서 케인시언들이 득세할 여지가 커졌다. 이밖에 경제계획에 있어서는 돌발사태에 수시로 대응할 수 있는 '상황론적 정책운용(contingency plan)'이 중시될 것이 확실시된다. 정책운용과 기업경영에서는 미래의 환경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처하는 선제적 정책운용과 시나리오 경영이 국가 혹은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대두될 전망이다.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