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야생과 사육의 경계에 선 애완동물이다. 고양이는 주인의 손길에 몸을 맡긴채 나른한 생을 살아가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도둑고양이"가 되기도 한다. 스무살의 여자도 고양이처럼 기로에 선 인생이다. 고교졸업후 집안의 뜻대로 길들여질 것인지,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속으로 뛰어들 것인지 택일을 강요받는다. 정재은 감독의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는 여상출신 다섯 동창생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성인신고식을 갓 치른 여자들의 꿈과 고민들이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성공하고픈 야심가 혜주(이요원),가난속에서 자존심의 날을 세운 지영(옥지영),넓은 세상을 보고픈 몽상가 태희(배두나),천진난만한 쌍둥이 자매 비류(이은실)와 온조(이은주) 등의 일상을 카메라가 담담하게 따라간다. "빽"으로 증권회사 여급으로 입사한 혜주는 "평생 잔심부름만 하는 저부가가치 인간으로 살기 싫다"고 외친다. 그는 친구들중 가장 좋은 회사에 다니지만 "심부름꾼" 신세란 처지에 늘 마음이 아프다. 지영은 영리하지만 보증서줄 사람이 없어 취직을 못한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해 스스로 위로해 볼 뿐이다. 태희는 뇌성마비 시인을 좋아하지만 다가설 수 없다. 주변인들이 모두 말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좋아해선 안될 사람이란 있을 수 없고,하지 말아야야 할 일도 일도 세상엔 없다"고 믿는다. 등장인물 누구도 자신의 처지를 깨고 나갈 해답을 얻지 못한다. 태희가 결국 외국구경을 결심하는 것처럼 대안과 정답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의 모색과 방황이 차분하게 펼쳐질 뿐이다. 각자의 여정은 고양이 한마리의 이동경로를 따라 조금씩 바뀐다. 지영이 얻은 고양이는 혜주에게로 전해지고 다시 태희를 거쳐 쌍둥이 자매들로 손바꿈한다. N세대의 상징인 휴대폰은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도구로 기능한다. 휴대폰을 끄면 불안감에 견딜 수 없어 쉴새없이 통화한다. 휴대폰 음악 소리에 맞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듯 두 손으로 능숙하게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이들에게 휴대폰은 생존경쟁의 각박함을 위무해 주는 "따스한 우정"이다. 혜주가 업무 때문에 휴대폰을 끊는 장면은 가정과 사회,우정과 생존경쟁이 양립할 수 없는 현실을 시사한다. 작품 무대인 인천은 젊은날의 "방황과 혼돈"을 부추기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도시와 항구,신공항이 공존하고 빈민촌과 부촌,중국인과 동남아인,한국인이 혼재돼 있다. (13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