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실패연구' 바람] 아픈경험 살려 성공모델 만든다..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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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망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패 연구'는 기업에서부터 자발적으로 확산돼 왔다.
'이제는 실패학이다'라는 일본 서적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임승남 롯데건설 사장은 "사업에서 성공확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는 성공보다 훨씬 가치있는 자료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세원텔레콤 홍성범 회장도 "유럽형 GSM 휴대폰 제작기술을 IBM과 공동 연구하다가 실패를 경험했다"며 "그러나 실패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해결책을 찾아 결국 휴대폰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고 경험담을 털어 놓았다.
최근 과학기술부가 실패 연구에 나선 것은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사고 공화국' '비리 공화국'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책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일이 거의 없는 정부가 실패 연구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 왜 실패 연구인가 =실패 경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성공의 밑거름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바탕으로 성공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독일 바이엘사의 아스피린은 원래 염료로 개발됐다가 실패한 제품이었다.
미국 3M사의 '포스트잇'도 접착제로 만들어졌다가 접착력이 약해 실패작으로 판명났지만 한 직원의 집념으로 히트 상품이 됐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은 초창기 남미에 수출했다가 시험 가동중 폭발해버린 터빈을 아직까지 소중하게 관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두산이 페놀 방류사건 이후 오히려 환경 친화기업으로 이미지를 바꾼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임택 남부발전 사장은 "이제 우리도 선진국의 경쟁자가 됐기 때문에 선진국의 노하우를 전수받던 때와 달리 우리 스스로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며 "성공을 위해 실패를 연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실패 연구 어떻게 해야 하나 =전문가들은 '기록'과 '정보 공유'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대형 사고가 나더라도 책임자 처벌만 한 뒤 시간이 지나면 잊어 버리는 오래된 관행을 막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실패 사례 발생시의 주변 상황, 경과, 원인, 대처방안 등을 세밀하게 기록해야 한다.
특히 객관적 정보뿐만 아니라 의사 결정자의 주관적 심리상태까지도 생생하고 솔직하게 남겨 둬야 실패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또 이 가운데 쓸모있는 정보를 선별, 사내 인트라넷과 각종 교육 등을 통해 전 직원이 공유하게 만드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실패 전에는 항상 조짐과 징조가 나타나는데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전 사회적으로 실패 사례를 교육에 활용하려는 풍토가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 걸림돌은 없나 =실패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실패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를 위해서는 의도적이거나 알면서도 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나쁜 실패'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추궁하되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경우에는 면책이 되도록 기업이나 정부 시스템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삼성의 내부 문건은 선진 기업의 경우 영업직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지적 능력보다 실패 친화도(실패를 통해 활력을 얻어 재시도하는 능력)가 높은 사람을 우선 채용한다는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실패를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 공개를 꺼리는 풍조와 타인의 실패를 본인과 상관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개선돼야 할 과제로 꼽힌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