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테러로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질 당시 한인 준 리씨(37·한국명 이준희)가 만삭의 몸으로 용감하게 탈출,건강하고 예쁜 딸을 낳았다고 미국 최고 인물전문 주간지 '피플'최신호(10월1일자)가 보도했다. 피플지는 '미국 단결하다(America Unites)'라는 제호의 동시 테러 참사 특집호에서 "이씨가 죽음에 맞서 용감하게 탈출한 후 새 생명을 얻었다"고 전했다. 유엔 변호사로 일해온 임신 9개월의 이씨는 지난 11일 무역센터 중앙홀에 있다가 천장에서 유리와 콘크리트 파편이 비오듯 쏟아지자 "이제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출산예정일을 열흘이나 넘긴 이씨는 발이 부어 슬리퍼를 신고 있었던 데다 몸이 무거워 빨리 달릴 수 없었으나 뱃속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이씨는 "사람들은 울고 비명을 질렀으며 차들은 신호를 무시한 채 달리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약 10블록을 정신없이 달린 끝에 베스트웨스턴호텔을 발견했다. 오후 4시께 휴대폰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온 남편 토머스 렛소우씨(41·변호사)가 이 호텔 방을 잡았다. 그러나 초저녁까지 호텔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전화도 불통이었다. 렛소우씨가 자정께 잠깐 잠을 청하려는 사이 이씨의 산통이 시작됐다. 렛소우씨는 "의사도 없이 깜깜한 방에서 애를 낳는 것이 몹시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정전과 먼지 연기로 칠흑같이 변해 버린 맨해튼 밤 거리를 따라 3㎞ 이상을 걸어 당초 애를 낳기로 했던 베스이스라엘병원에 닿았다. 이씨의 진통은 더욱 심해졌으나 렛소우씨는 "아내가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호텔에서 병원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90분. 이로부터 8시간 뒤인 12일 오전 1시5분 이씨는 3.2㎏의 첫 딸 엘리자베스를 낳았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 이씨는 "정말 오래 기다렸다"며 "아이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