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골프 뒷얘기] 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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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한때 정치를 했으나 금강CC에서 정치인들과 단 한 차례도 라운드하지 않았다.
정 명예회장은 92년 14대 대선이 끝나고 나서 몸이 극도로 안좋아졌다.
옆에서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있었다.
대선 출마만 안했어도 10년 이상 더 살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선이 끝난 지 4∼5개월이 지나 골프장에 나왔는데 스윙을 제대로 못했다.
어떻게 이처럼 갑자기 건강이 나빠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그 후 매주 골프장에 나왔다.
하지만 건강은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
몸을 잘 가누지 못해 자주 주위에서 부축하려 했지만 질색하며 노하곤 했다.
이때부터 그린에 올라가면 퍼팅을 딱 한 번만 했다.
이전에는 홀아웃 할 때까지 퍼팅을 했었다.
대선 이후에는 말도 없어졌다.
정 명예회장은 따뜻한 분이다.
추석과 설날 등 명절이 오면 금강CC 임원과 헤드프로에게 선물로 멸치와 미역을 보내주었다.
캐디에게는 항상 따뜻하게 대해 주며 금전적으로도 후하게 도움을 줬다.
한번은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92년 대선 직전 정 명예회장이 라운드를 하는 날 하필 앞팀에 현대건설 중역들이 골프를 치고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연습스윙도 없이 빨리 플레이를 하다 보니 앞팀에 바짝 붙게 됐다.
이때 앞팀의 한 중역이 뒤에 정 명예회장이 오는 것을 보게 됐다.
이들은 깜짝 놀란 나머지 카트에 백을 실은 채 두고 도망을 가버렸다.
정 명예회장이 당도하니 손님은 없고 캐디가 혼자 멀뚱멀뚱 서 있었다.
정 명예회장이 "앞팀은 안나가느냐"고 묻자 캐디는 "급한 일이 생겨서…"하며 우물쭈물 했다.
당시 이 사건이 골프장에 알려지면서 배꼽을 잡는 얘기로 화제가 됐다.
나중에 정상영 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이 자초지종을 파악해 정 명예회장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중역들이 정 명예회장을 보고 놀란 나머지 도망을 갔다는 얘기를 들은 정 명예회장은 "망할놈들! 인사하고 치면 되지 왜 도망을 가?"라고 말했다 한다.
금강CC는 '코스는 쉬워야 된다'는 정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벙커를 많이 없앴다.
처음에 약 1백개가 있었는데 20개 정도가 사라졌다.
티잉그라운드도 앞으로 많이 당겨 놓았다.
특히 5번홀 앞에 연못이 있는데 정 명예회장은 이 연못을 넘기면 매우 좋아했다.
드라이버샷 거리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보통사람보다 많이 짧은 편이었는데 대선 후 건강이 악화돼 더 줄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티를 레이디티 앞으로 빼 정 명예회장이 연못을 넘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도움말:이강천 전 금강CC 헤드프로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