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창 < 서울지방중기청장 > "현금 몇억원 몇십억원을 쉽게 만지는 젊은 벤처기업인이 부럽다. 대학을 나와 30년 이상 대기업에 근무하지만 현금 몇백만원을 써보지 못했다" 벤처열기가 뜨겁던 2년전 이맘때쯤 재벌그룹계열의 모 대표이사가 한 말이다. 지난 3년반 벤처기업의 영광과 추락을 보면서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요즈음에는 벤처기업인을 만나면 한숨 소리 뿐이다. "단돈 몇백만원 구하기 어렵다. 추석을 앞두고 겁이 난다. 투자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정책자금이 있는 곳에 벤처기업이 벌떼같이 모인다. 금년말이 지나면 벤처기업 임원중에 얼마나 많은 신용불량자가 생길지 모르겠다" 신생 벤처기업만 아니라 1세대 벤처기업까지 정말 어렵다. 금년에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경기가 둔화되고 IT산업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불황이 길어지고 있다. 대기업의 구조조정과 금융산업개편, 실물경제둔화도 한몫하고 있다. 코스닥 침체가 깊어지면서 창투사의 투자가 크게 줄고 엔젤투자는 중단된지 오래다.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우량 벤처기업마저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넉넉하던 자금시장과 '묻지마 투자' 속에서 벤처기업들이 누렸던 호황시절과 비교하면 지금 벤처기업이 맞이한 상황은 최악이다. 젊은 벤처기업인들은 재벌흉내내기 외형성장, 매출팽창주의식 경영,마케팅 부족과 수익모델 부재, 무리한 투자유치와 사업확장, 코스닥시장과 보유주식에 대한 장밋빛 환상, 수출보다 내수시장 확보를 위한 과당경쟁 등이 벤처기업 스스로 만들어 낸 문제라고 말한다. 많은 벤처기업인들은 시장을 통해 도덕적 해이현상이 사라지고 옥석 가리기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 사실 벤처기업은 지난 3년간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비해 경영성과가 뛰어났으며 성장 고용 생산 수출증가 기술혁신에 크게 기여했다.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시장구조를 약화시키고 금융시장구조를 간접금융방식에서 직접금융방식으로 바꾸었다. 기술혁신을 통해 나스닥에도 상장했다. 벤처기업은 우수한 기술인력으로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 자극과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만들어 지식정보시대의 기업모델로 평가받았다. 벤처기업은 체질을 강화하고 활력을 충전받아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최고점에 비해 6분의 1로 떨어진 코스닥지수가 회복돼야만 창투사와 엔젤투자가 살아나고 극심한 자금난이 해소될 수 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직접적인 지원을 해주기 바라는 벤처기업인은 많지 않다. 벤처생태계가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공정경쟁이 보장되고 창의를 존중하는 시장경제와 발달된 금융시장, 코스닥시장 진입과 퇴출, 기업공시제도 등 벤처산업의 제도와 관행을 선진화시켜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들은 실패를 인정하고 용인하는 문화, 기술 경영 특허 법률 등 지원조직의 네트워크구축, M&A시장 활성화, 기업가치평가제도와 기술이전거래제도의 정착을 바라고 있다. 부족한 경영관리시스템을 보완하고 마케팅 능력을 제고하며 해외시장 진출을 확대하는 것은 벤처기업이 할 일이다. 유연성 기민성 역동성을 가진 벤처기업에 지식정보화시대는 기회이다. 벤처기업인은 한국을 벤처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시작을 할 때이다. 이를 위해선 먼저 창업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모험과 도전의 기업가 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차별화된 제품과 콘텐츠로 수익창출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특별히 다른 제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며 투자자와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줄려는 의지를 가지고 경영의 투명성 확보와 정직한 경영에 노력해야 한다. 시장의 힘을 무시하고 소비자와 투자자의 신뢰를 잃으면 회사만 망하는 것이 아니고 기업인의 명예까지 잃게 된다. 사업 이외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거나 자립의지없이 무조건 다른 기업과 제품을 모방하고 따라가는 곁불은 금물이다. 미국의 유명한 벤처캐피털리스트인 아서 록은 위대한 인물이 위대한 회사를 만든다고 했다. 경쟁력이 강한 기업은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 GE, 휴렛팩커드, 머크, 소니같은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신뢰성과 품질을 보장하는 브랜드를 만들면 벤처기업의 영광은 재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