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평화상문화재단(이사장 이철승)과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는 24일 서울평화상 제정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동북아문제 전문가인 에즈라 보겔 미국 하버드대 교수를 초청, 고려대 국제회의장에서 "한국의 평화를 위한 미.일.중 관계"라는 주제로 특별 강연회를 열었다.


보겔 교수는 이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핵심 사안은 이 지역을 둘러싼 미.중.일 3국간에 안정적인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라며 "중국으로 하여금 동아시아 지역에서 책임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겔 교수는 현재 부시 행정부의 동아시아정책 자문위원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지금 아시아는 역사상 처음으로 '강한 중국'과 '강한 일본'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는 아니지만 미국 역시 아시아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이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의 3국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백50여년간 동아시아 지역은 언제나 해외 열강들의 힘겨루기를 위한 각축지였다.


열강들의 이해 관계에 따른 지역 역학구조에 의해 피해를 보기도 하고 수혜를 입기도 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중국의 역할 증대가 관건=점점 더 강대해지는 중국의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한 다른 국가들의 가장 적절한 방법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유지하거나 한국 일본과 같은 나라와 동맹관계를 굳건히 함으로써 중국이 다른 국가를 위협하거나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에 자국의 최우선적인 목표,즉 경제력 증대와 대만에 대한 주권 확보가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믿음을 우선 심어주는게 더 중요하다.


지금의 미·일동맹은 강력하고도 안정적이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의 신뢰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중국으로 하여금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중국이 다른 국가와 경제관계를 증대함으로써 자국의 부를 축적하는 것과 같이 비군사적인 행동을 통해서도 국익을 증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시켜야 한다.


◇한국의 역할=동아시아 지역이 지속적으로 안정될 경우 가장 큰 수혜를 보는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의 이익은 미국 중국 일본등 강대국들과 얼마나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한국은 강대국 사이는 물론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완충국가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 역할을 맡으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다른 국가들과의 협조아래 안정적인 군사 균형을 제공하는 한 미국 일본 한국은 중국으로 하여금 지역적 행동에 좀더 깊숙이 개입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것은 향후 중국이 이 지역의 평화를 위해 좀 더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북한의 점진적인 개방이 필요=미국 중국 일본 3국은 모두 북한이 식량 지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에도 동의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이 하루 아침에 붕괴하고 정치적으로 빠르게 남한에 통합된다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시나리오는 쉽게 실현되지 않는다.


만약 일어난다면 한국에 큰 고통을 안겨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 중국 일본 모두에 가장 긴요한 일은 북한의 점진적인 개방을 이끌어냄으로써 북한이 급격히 붕괴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북한이 완급을 조절하면서 단계적으로 개방하지만 어느 순간 개방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1987년 시작된 중국과 대만의 관계 개선과 같이 경제·문화적 관계는 정치 관계보다 더 급격하게 발전할 수 있다.


한국과 북한 관계의 정치적 해결을 위해서는 수십년이 걸릴 수도 있다.


북한의 개방과 관련된 문제는 미국 중국 일본간의 협력을 위한 '황금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미·중·일 3국은 다양한 협력 형태를 개발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국가간의 공조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한국도 북한의 개방 과정에서 미·중·일 3국과 긴밀한 협력을 증대시킴으로써 유·무형의 이익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리=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