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펜타곤)의 서쪽 건물 붕괴 모습을 보기 위해 워싱턴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모인 곳은 메이시 백화점 지상 3층 주차장이었다. 메이시 백화점은 펜타곤 옆을 지나는 아미네이비 길 건너편에 있어 펜타곤을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장소였다. 테러공격이 있은지 만 24시간이 지난 12일 낮에도 허물어진 건물에서는 연기가 나고 있었다. 망원경이나 카메라를 든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주차장에 모여 테러범들에 대한 분노와 함께 허술하게 당한 미국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분출했다. 기자들도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어제 매장에 들어선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폭탄이 떨어진 줄 알고 허겁지겁 뛰어나왔는데 펜타곤 위로 화염이 치솟아 오르더군요. 8백명이 죽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테러범을 찾아 응징해야 합니다" 메이시 백화점에서 일한다는 케이시씨(25·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미국시민들의 분노는 부시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번 테러를 '전쟁 상황'으로 규정하게 만들었다. 한 관광객이 끼여들었다. "즉각 보복해야 합니다. 테러범을 숨겨주고 있거나 관련된 국가들을 공격해야 합니다" 흥분한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회가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경해지는 부시 대통령을 거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주차장에 모인 시민들 가운데는 "부시 행정부에 실망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메이시 백화점의 에리카씨(27·여)는 "보안에 가장 신경써야 할 국방부가,그것도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당한 후에 공격받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군인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었느냐"고 분노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시시콜콜 간여하는 게 잘못된 것 아닙니까. 미국시민들의 안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도 부족한 판에 온갖 분쟁지역에 해결사로 끼여들고 또 이 나라 저 나라와 무역협정을 맺는다면서 괜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