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현정의 '패션 읽기'] 패션쇼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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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맞은 패션계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10월과 11월이 의류시장 연중 최대 성수기인만큼 각종 판촉행사와 패션쇼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달들어 열린 패션쇼만 해도 10여개에 이른다.
화장품 회사의 크고 작은 제품설명회까지 합하면 20개가 넘는 이벤트가 지난 1주일 사이에 열렸다.
행사가 워낙 많다보니 같은 날 같은 시간으로 일정이 겹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패션쇼의 홍수속에서 가장 골치를 앓고 있는 사람은 브랜드 홍보 담당자들이다.
행사의 초청 대상자는 대부분 패션관련 매체 기자와 백화점 바이어 등으로 극히 제한된 인원.
때문에 홍보팀들은 초청인사들을 다른 이벤트에 뺏기지 않기 위해 갖가지 묘안을 짜낼 수밖에 없다.
첫째는 초청장을 통한 흥미유발이다.
초청장을 뜯어보는 순간 브랜드 컨셉트는 물론 패션쇼의 분위기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007 제임스 본드'를 패션쇼의 이미지로 삼은 독일브랜드 휴고보스는 금색총알을 초청장에 붙여 발송했다.
행사장 입구에서 총알을 출입증 대신 보이라는 뜻이다.
이번 시즌 화려한 컬러가 특징인 크리스찬디올은 초대장 또한 종이가 아닌 형광 주황색 아크릴판으로 만들어 눈길을 끌었다.
패션쇼 장소도 중요하다.
몇년 전부터 시작된 '탈(脫) 호텔'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4백명 이상을 초대하는 대형행사를 제외하고 호텔에서의 패션쇼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최근 패션쇼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곳은 갤러리.
손님과 주최측이 오붓하게 마주할 수 있는 카페나 바(bar)도 인기다.
디자이너 노승은씨처럼 카바레나 주차장 등 파격적인 공간을 좋아하는 패션 관계자들도 많다.
캘빈클라인진스는 남산 꼭대기에 대형텐트를 치고 손님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쇼의 형식이다.
수입브랜드 중에는 외국에서 했던 것과 또 같은 형식의 패션쇼를 국내에서 열어 낭패를 본 경우가 더러 있다.
칵테일 잔을 들고 다니며 대화를 즐기는 스탠딩파티,패션쇼 무대가 끝난 뒤 함께 춤을 추는 댄싱파티 등을 개최했던 업체의 관계자들은 행사내내 '썰렁'한 분위기가 가시지 않아 식은 땀을 흘려야 했다고 고백한다.
패션계에 이처럼 이벤트가 풍성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대부분 수입 옷과 보석,수입 화장품 행사라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씁쓸해진다.
국내 업체들은 요즘같은 불경기에 어떻게 패션쇼를 열겠느냐고 푸념하고 있지만 수입업체들의 이벤트계획은 연말까지 빽빽하게 차있다.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