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럽 케이블업계의 떠오르는 '실력자'는 리처드 캘러헌(59)이라는 미국 출신 기업가다. 30년이 넘게 통신.케이블업계에 종사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케이블맨'이다. 미국인인 그가 이처럼 유럽 시장에 남달리 밝은 것은 1990년대 초반기에 미 통신업체 US웨스트의 런던 지사장을 지냈고 그후 영국 2위의 케이블업체 텔레웨스트의 공동 설립자로 활약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1996년,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딴 캘러헌 어소시에이츠 인터내셔널이라는 벤처투자회사를 설립한 그는 최근 스페인 독일 벨기에 등 유럽 곳곳에서 케이블 사업에 투자하면서 가공할 위세를 떨치고 있다. 유럽에서 정보화에 뒤처진 축에 드는 스페인의 발렌시아 지방을 '케이블 도시'로 탈바꿈시킨다는 웅대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신생 케이블업체 오노(ONO)도 캘러헌 산하의 회사다. 단순한 케이블TV 수준이 아니라 전화와 고속 인터넷 등으로 연결된 첨단 '네트워크 도시'를 만든다는 이 야심찬 계획에 그는 25억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물론 이는 그가 소유한 '영토'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지난 1∼2년간 계속해서 '빅딜'을 성사시켜 왔다. 지난해 도이체텔레콤의 케이블 자회사 지분을 55% 인수하고, 올 초엔 벨기에의 케이블업체인 텔넷 지분을 54% 사들이는 등 파죽지세로 사업확장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그가 거느린 스페인 독일 벨기에 3개국의 케이블망을 다 합치면 '캘러헌 제국'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진다. 가입자수만 8백50만명에 달할 정도다. 이는 미국내 3위 케이블업체이자 현재 미 최대 장거리전화회사인 AT&T의 인수를 모색하고 있는 컴캐스트에 필적하는 규모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사항은 캘러헌이 자신의 돈은 거의 쓰지 않고 이러한 제국을 일궈냈다는 점이다. 물론 업계의 상황은 좋지 않다. 전반적인 경기둔화 속에 일부 유럽 케이블업체들은 주가 폭락과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전 네덜란드 케이블업체 UPC의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슈나이더는 이러한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사표를 내던졌다. 캘러헌이라고 해서 현금 흐름에 압박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비상장기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주가에 목을 맬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그는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받아 벤처에 투자하고 사업의 성공을 위해 수하의 노련한 전문가들을 대거 투입시킴으로써 차곡차곡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이러한 '돈 안들이고 돈벌기' 전략으로 그는 지금까지 주식으로 47억달러, 채권으로 84억달러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이중 40억달러를 '곱게' 비축해 놓고 있다. 투자자들이 유럽의 대형 케이블업체 주식을 마구 내다팔고 있을 때에도 캘러헌은 그의 사업수완을 믿는 후원자들을 양팔에 끼고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폭발적인 데이터 증가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전으로 '케이블의 미래'를 확신하는 그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광대역(broadband)의 추종자다.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서라면 육지든 바다든 하늘이든 가지 못할 곳이 없다" [ 정리=국제부 inter@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