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인 탐구] 배중호 <국순당 사장> .. "백세주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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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버지처럼 되기는 죽도록 싫었습니다.장래성 없어 보이는 누룩장사보다 "큰 물"에서 놀고 싶었죠.그런 제가 좋은 누룩(鞠)으로 좋은 술(醇)을 만드는 집(堂)주인이 돼 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을까요"
"백세주 신화"를 일궈나가고 있는 국순당의 배중호(裵重浩.48)사장.
배사장은 그토록 싫어했던 누룩의 우직한 생명력처럼 주류업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94년 매출액 20억원 안팎의 "구멍가게" 수준에 불과했던 국순당은 최근 불고 있는 '50세주(백세주와 소주를 반반씩 섞어 만든 술) 바람' 등 백세주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해마다 1백%이상의 초고속 신장을 거듭했다.
이를 통해 올해는 매출액 1천3백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98년에는 국내 주류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고 지난해 8월에는 코스닥에 등록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IT관련 벤처기업들이 생겨나는 마당에 전통주업체가 코스닥에 등록하겠다고 하니 모두 웃더라"는 게 그의 말이다.
그러나 국순당은 올해 상반기 매출액 대비 22%의 순이익률을 기록,코스닥에 등록된 어떤 업체들보다 성장성과 부가가치가 높은 유망 벤처기업으로 대우받고 있다.
"스코틀랜드에는 위스키가 있고 프랑스에는 코냑이 있죠.'한국을 대표하는 술' 그게 바로 국순당이 가진 최대의 자산입니다"
대학(연세대 생화학과) 졸업 후 한동안 무역업체에서 근무하던 그는 80년대초에 가업으로 돌아왔다.
부친이 운영하던 누룩제조회사인 배한산업에 연구원으로 입사,본격적인 누룩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의 뒤를 따르기 싫어 도망치듯 들어갔던 무역회사.
그러나 그곳은 그의 자리가 아니었다.
이후 10여년간 연구끝에 개발한 게 문헌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무증자 발효법'.
종전처럼 쌀을 찌지 않고 생쌀을 가루로 만들어 누룩과 함께 버무린 뒤 물을 붓고 술을 빚는 방법이다.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전통약주를 통해 건전한 음주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경영철학은 이때 구체화됐다고 한다.
아버지를 빼놓고는 그를 얘기할 수 없다.
선조의 가업을 이어 누룩 제조에 필생을 바쳐 온 분이 바로 그의 아버지 배상면(裵商冕·78)씨다.
배 사장만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니다.
그의 두 동생들도 마찬가지로 전통주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96년 국순당에서 분가해 '산사춘'으로 전통약주 시장에 뛰어든 배상면주가 배영호(43) 사장이 그의 동생이다.
여동생 혜정(45)씨 역시 탁주 전문업체인 배혜정누룩도가를 운영하고 있다.
'그 아버지에 그 자식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집안이다.
그러나 이들 가족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배중호 사장에게는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온다.
"언제부턴가 주위 사람들은 백세주보다 저의 가족에게 더 관심을 갖더군요.이제는 가족들과 엮이는 게 싫습니다.실력으로 평가를 받고 싶어요"
배 사장에게는 요즘 또 다른 도전거리가 생겼다.
전통약주가 주류업계의 황금시장으로 떠오르자 진로 두산 등 메이저 주류업체들이 신제품을 들고 뛰어든 것이다.
전국적인 유통망과 영업노하우를 가진 대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도 그는 '자신있다'는 표정이다.
"전통약주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봅니다.실제로 진로와 두산이 잇달아 전통주시장에 뛰어들었던 지난 4월의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30%이상 신장했어요"
일본시장 공략도 본격화한다.
지난 5월 설립한 일본 현지법인의 직원채용을 마무리짓고 9월부터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간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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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필 >
생년월일=53년5월18일
출신학교=용산고(71년 졸업) 연세대 생화학과 졸업
입사년도=78년(롯데상사) 80년(배한산업)
경력=이사(배한산업,84년) 대표이사 사장(국순당,93년) 부설 연구소장(96년) 한국미생물학회 이사(2000년)
취미=바둑(5급),골프(핸디캡 18)
가족관계=부인 석영호씨와 사이에 1남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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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량은 ]
배중호사장은 "두주불사형"은 아니지만 "애주가형"이다.
일 때문에 술을 마시는 일은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한다.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직원들하고 어울릴 때도 술을 강권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분이 좋아지면 "확실하게" 마신다.
회식자리에서 백세주와 위스키를 섞어 만든 "백세주 폭탄"를 돌리는 경우도 있다.
국순당에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는 요즘.
배사장도 슬슬 피곤함을 느끼는 듯 하다.
최근 기자와 사적으로 가졌던 점심식사 약속에는 입술이 터진채 나타났다.
"매일같이 계속되는 강행군에 탈이 난 모양"이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건강에 신경좀 써야겠다"고 하자 "낮에는 좀 피곤하지만 밤에 백세주 한두잔 들어가면 그때부터 제 정신으로 돌아온다"며 "허허" 웃는다.
술 마시고 기분 좋아지면 항상 부르는 노래는 나훈아의 "사랑".
아는 노래가 이것밖에 없단다.
현재 그는 레퍼토리를 늘리려 맹연습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