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커온 전문가는 홀대받고, 외국기관에서 주변업무나 하던 사람이 우대받는 현실이 제대로 된 것인가" 금융감독원의 모 고위층 인사가 최근 간부회의에서 제기한 발언이다. 이 간부는 기자와 만나서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국내기업과 경제풍토를 잘 아는 뱅커가 금융 전문가지,미국 본점에서 정한 대출규정대로 하급업무만 취급해온 외국은행 출신이 더 전문가인가 말이다" 금융감독원의 이 간부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분통을 터뜨리는 국내파 금융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외국은행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수억원대의 연봉과 스톡옵션(주식매입청구권), 그리고 '젊은' 나이에 최고경영진으로 뛰어 오르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는 금융계 인사풍토를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 잘 나가는 외국은행 출신들 =하영구 한미은행장, 강정원 서울은행장, 민유성 우리금융지주회사 부회장, 박환규 우리금융 전무, 도기권 굿모닝증권 사장, 하나은행 송갑조 부행장, 이성남 금감원 부원장보, 스미스바니 증권의 서부택 전무 등 국내 금융계에서 '잘 나가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미국계 씨티은행 출신이란 점이다. 특히 하 행장은 칼라일 그룹의 후광에 힘입어 한미은행장을 맡을 때 씨티 서울사무실의 동료였던 박진회 강신원 원효성씨를 부행장으로 기용, 시중의 주목을 끌기도했다. 더구나 이들이 맡은 업무는 기업금융본부장, 개인금융본부장, 카드사업본부장으로 은행업무의 핵심노른자위였다. 씨티은행의 천하평정이라는 비판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서울증권 강찬수 사장, 세종증권 김동진 부사장, 서울창투 이재연 사장도 그렇고 국내 금융시장을 요란하게 흔들다 해외로 나가버린 김석기씨도 체이스은행, 뱅커스 트러스트(BTC) 등 외국금융사 근무경력자들이다. 시중은행(제일.서울)까지 가급적 외국에다 팔겠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목표였고 보면 외국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금융계인사들이 시쳇말로 잘 나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 성장길 막히는 토종 차세대 =모 증권사 애널리스트(증권 분석가) A씨. 국내대학 출신이지만 군복무하고 열심히 공부해 IMF이후 바늘구멍이 된 취업관문을 뚫었다. A씨의 사무실에는 외국대학 출신으로 해외 금융회사 근무경험이 있는 수입 애널리스트 B씨도 있다. 토종 A씨가 온갖 자료를 찾고 관련 업계나 기업의 현장 분위기까지 들어보면서 업종이나 종목 보고서를 만들어내면 선임자인 B씨는 겉표지와 목차등을 조금 손질한다. 그러나 B씨의 연봉은 A씨보다 몇배 많다. 금융계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토종들의 하소연이다. 이러다간 외국 회사 경력이 없으면 아예 승진도 포기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게 토종들이 갖는 위기감이다. ◇ 실력으로 평가받도록 =금감원 모 국장은 "수입형이나 토종이나 업무능력면에서는 대등하다"면서도 "낡은 금융의 틀을 깨기 위해서 다소는 의도적으로 외국회사 출신이 우대받았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한 간부는 "국내파들을 필요이상으로 기를 죽이고 있기 때문에 연간 수만명씩 '묻지마 해외유학'에 기를 쓰고 나가는 것이 아닐까"하고 반문하기도 했다. 시중은행의 한 인사는 "정작 토종들에 대해서는 관치압력이 엄청나고 나중엔 바로 그것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