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아침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목수 일을 하는 마셜은 방수로 밑에서 모래알 크기의 금속을 한 움큼 발견했다. 그는 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를 움켜쥔 채 빗속을 달렸다. 숨을 헐떡이며 이 모래알들을 제재소 주인인 존 오거스트 사타에게 내보였다. 두 사람은 서둘러 문을 잠그고 약제사용 작은 저울로 비중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사타가 외쳤다. "이건 금이야" 1848년 1월24일 캘리포니아의 시에라네바다 산맥 기슭에서 황금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황금의 발견을 비밀에 부치기로 했으나 그 비밀은 몇주일 되지 않아 소문이 꼬리를 물고 동부로 번지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병영을 뛰쳐나와 황금을 찾아 나설 정도였다. 연말이 되자 대통령이 의회에서 "소문이 거짓이라곤 말할 수 없다"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동부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가자 서부로' 보통 콜럼버스가 신대륙의 황금을 찾아 나선 모험을 세계 최초의 벤처로 꼽는다. 콜럼버스는 '벤처 비즈니스'이고 돈을 댄 이사벨라 여왕은 '벤처캐피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황금을 찾는 것에서만큼은 실패한 벤처였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 황금을 찾아냈다니 벤처를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49년은 이른바 골드 러시의 해였다. 이 포티나이너스(49ers)들은 엽총과 도구들을 챙겨 포장마차를 타고 갖은 위험을 무릅쓴 채 3천2백㎞에 이르는 길을 횡단했다. 한 해가 지난 뒤 스물한 살의 젊은이가 서부에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리바이 스트라우스였다. 행상을 하던 그는 황금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양복점을 차려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왔다. 서부에 먼저 도착한 그의 형제들은 뒤늦게 온 그를 위해 천막에 쓰이는 조크천 몇 필을 선물했다. 그가 조크천으로 천막을 재단하고 있을 때 광부 한 사람이 찾아와서 "그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 팔면 질겨서 잘 팔릴 텐데…"라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광부에게 조크천으로 바지를 만들어줬다. 이 바지야말로 청바지의 원조였다. 골드 러시 붐을 타고 청바지는 그 '실용성'을 인정받아 잘 팔렸다. 그러나 청바지를 세계인의 바지로 만든 것은 실용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바지가 성공한 것은 1970년대 초부터 새로운 '컬처'와 접촉하면서부터였다. 이는 반항과 청년문화를 상징하면서 전세계로 번져나갔다. 사실 청바지를 입는 것이 실용성 때문만이라면 왜 청바지를 찢어서 입겠는가. 앞서가는 벤처기업인이라면 이제 더 이상 실용성과 첨단에만 매달려선 성공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이해했을 것이다. 벤처가 또 다른 성공을 이뤄내기 위해선 컬처와 접촉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지금 새 벤처 모델을 찾는다면 컬처와 결합할 곳이 없나를 청바지 입고 포장마차에 앉아 한번 생각해보라. 그러면 엽기적인 황금 시장을 곧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