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 하나로통신 등 특정 오너가 없는 기업을 대규모 기업집단(현 30대그룹) 지정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의 공정거래법상 규제완화 방안을 놓고 정부 부처내에서 또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되는 기업에 대해서까지 까탈스럽게 "대규모 기업집단"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재정경제부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현행 고수"를 주장하고 있는 것. 여.야 정치권은 최근의 경제정책협의회에서 출자제한 등 갖가지 제재가 가해지는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자산 순위 30위까지"에서 "일정 자산규모 이상"으로 전환한다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이같은 합의가 '양적인 개선'에만 치우쳤다는 지적을 감안,지정 대상을 보다 합리화하는 등 '질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재경부쪽 생각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12일 "자산규모는 크더라도 재벌의 성격이 약한 그룹을 굳이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할 이유가 없다"며 "연내 공정거래법과 시행령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대규모기업집단제도는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기 위한 제도"라며 "소유구조는 객관적인 검증이 가능하므로 적용 대상 기업을 둘러싼 논란도 배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진념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도 "기업의 지배구조나 경영행태와 상관없이 자산총액만으로 규제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며 몇차례 비오너 기업 문제를 거론했다. 이에 따라 포항제철 하나로통신 등 그룹의 '동일인'이 재벌 총수가 아닌 법인인 대기업은 대규모 기업집단에서 벗어날 것인지 여부가 주목된다. 또 채권단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하이닉스반도체와 현대건설 등도 지정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담당부처인 공정위는 "무슨 소리냐"며 반대하고 있다. 김병일 부위원장은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제도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제도"라며 "총수가 없더라도 문어발식 확장이 가능한만큼 소유구조만을 잣대로 일부 기업을 대상에서 빼주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김 부위원장은 또 "과거 기아그룹도 전문경영인 체제였지만 오너가 있는 다른 재벌과 똑같은 경영행태를 보인 끝에 파국으로 치달았다"며 "대기업이 잘못될 경우 국가 전체에 큰 위협요소가 되는만큼 소유구조와 관계없이 최소한의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두 부처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비오너 대기업의 대규모기업집단 졸업' 문제는 상당기간 논란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대규모기업집단제도 운영은 공정위 소관인 만큼 뭐라고 말할 게 없다"며 외부적으로 이 문제가 증폭되는 것을 경계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