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극장가에 섬뜩한 공포가 번진다. 지난해 여름의 공포물이 피가 난무하는 슬래셔 무비가 주종이었다면 올해엔 서서히 강도를 높여가는 "보이지 않는 공포"가 관객들의 목덜미를 노린다. 윤종찬 감독의 "소름"(제작 드림맥스)은 통상적 공포영화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질척한 피흘림도 잔혹한 칼부림도 없다. 악연으로 얽힌 인간들의 운명적 비극을 그린 "소름"은 색과 빛과 소리를 절묘하게 조합하며 "예술적인 공포"를 구축해냈다. 무대는 철거직전의 재개발아파트. 택시기사 용현(김명민)이 504호에 새로 이사온다. 504호는 30년전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방에 불을 지른후 갓난아이만 가까스로 구조됐던 참극의 현장. 남편에게 학대받는 여자 선영(장진영),아파트에 내린 저주를 소재로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기주봉),남자친구를 화재로 잃어버린 은수... 뭔가 비밀들을 숨기고 있는듯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30년전 참극의 무대에선 비극의 싹이 다시 자란다. 영화는 탐욕과 이기심 같은 원죄가 인간을 파국으로 몰아넣는 다는 점에 주목한다. "소리"는 공포를 증폭시키는 효과적 장치다. 오래된 백열등 소음,낡은 문짝이 내뱉는 불길한 마찰음,황량한 자동차 소리,음산한 비소리,신경질적 웃음소리... 신경을 끊임없이 긁어대는 여러가지 소리들은 예사롭지 않은 공포를 예고하며 '소름'을 끼치게 한다. 화면은 흉가같은 아파트에 음산함을 더하고,깜빡이는 전등이나 모니터등은 심장박동을 함께 높인다. "소름"이 진정 공포스러운 이유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의문스러운 사건뒤의 처절하고 슬픈 진상에 있다. 운명의 굴레앞에 무기력한 인간군상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파국은 찾아든다. 진상과 관련된 단서들을 스치듯 드러내며 긴장감있게 반전을 엮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장진영 김명민의 호연도 빛난다. 부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돼 호평을 받았다. 4일 개봉. "더 홀"(The Hole)은 "아메리칸 뷰티"에서 딸로 나왔던 도라 버치가 주연한 미스테리 호러물. "스크림"등 10대들을 내세운 공포영화의 맥을 잇는다. 지하벙커에 갇혔다 구조된 십대 네명중 유일한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사건의 내막을 파헤쳐간다는 내용. 집착이 파멸을 부르는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나간다. 17일 개봉 예정. 박중훈.추상미 주연의 "세이 예스"(제작 황기성 사단)는 "손톱""올가미"등 일련의 영화들로 한국적 스릴러를 개척해온 김성홍 감독의 신작. 결혼 1주년 기념여행을 떠난 부부가 사이코 살인마에 쫓기게 되는 줄거리다. 음악이 공포감을 높인다. 박중훈이 이유없이 살인행각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로 변신했다. 하지만 "동기없는 살인"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18일 개봉예정. 정통호러 "세븐 데이 투 리브"(4일개봉)도 만날 수 있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