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테헤란밸리 .. 적자누적.인력이탈.자금난 '三重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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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교육업체에 근무하는 박주선(가명·34)과장은 요즘 e메일을 열어보기가 두렵다.
평소 알고 지내던 벤처기업 직원들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다른 업체로 옮긴다는 메일이 부쩍 잦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초 국내 굴지의 S그룹에 근무하다 신생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던 박 과장은 두달째 월급을 받지 못했다.
직원도 작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
그는 "대기업 절반 수준의 월급을 감수해 왔지만 기대했던 스톡옵션마저 휴지조각이 돼버려 직장을 그만둬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테헤란밸리에 드리워졌던 먹구름은 갈수록 두터워지고 있다.
수익 부재와 인력이탈 자금난이란 3중고에 허덕이고 있는 닷컴에서 활기를 찾기란 어렵다.
'테헤란밸리에서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됐다.
밤12시가 가까워지면 테헤란밸리에서 불이 환하게 켜진 사무실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든다.
선릉역 주변의 한 닷컴업체에 근무하는 김종원(29)씨는 "경기침체로 일감을 찾기가 어려운 탓에 정시 출퇴근하는 닷컴업체들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테헤란밸리의 침체는 주변 상권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한때 벤처인들의 사교장소로 성황을 이뤘던 각종 벤처카페들은 요즘 파리만 날린다.
벤처카페의 원조격으로 지난해 3월 문을 열었던 '벤처@소프라노 클럽'은 결국 1년여 만에 간판을 내렸다.
벤처 인큐베이팅업체 비앤씨아시아닷컴이 운영하던 '브릭&클릭'도 작년말 회사의 업종전환과 맞물려 영업을 중단했다.
역삼역 근처에서 근근이 한 벤처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 사장은 "장사가 안되는 것도 걱정이지만 의기소침한 단골들을 보면 마음이 더 상한다"고 털어놨다.
주변 호텔들도 울상이긴 마찬가지다.
테헤란밸리 주변에 위치해 벤처호황 덕을 톡톡히 보았던 대형 호텔들은 격심한 매출감소에 허덕이고 있다.
기자회견 제품설명회 제휴식 출범식 각종 모임 등 벤처기업들의 행사가 자취를 감췄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격감한 탓이다.
상당수 호텔의 경우 기업들의 행사가 작년 이맘 때에 비해 3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한 호텔 연회사업부 관계자는 "기업들의 행사유치를 위해 발로 뛰고 있지만 실적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닷컴들의 '탈(脫)테헤란밸리' 바람도 거세지고 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테헤란밸리로 몰려들었던 닷컴들이 비싼 건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강북이나 분당,보라매공원 등으로 빠져나가면서 테헤란밸리는 더욱 빛을 잃고 있다.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강재철씨는 "올들어 부동산 경기회복에 힘입어 테헤란밸리 사무실들의 임대료가 떨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사무실을 구하는 수요는 예전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앞날이 마냥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연말께면 테헤란밸리에도 다시 희망이 지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면 그동안 등을 돌렸던 투자자들이 테헤란밸리로 몰려들 것이고 그러면 닷컴들도 예전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인터넷서비스업체 프리챌의 전제완 사장은 "그동안 수익찾기에 골몰하던 일부 대형 닷컴들이 하반기들어 영업흑자를 내는 등 인터넷 비즈니스에 확신을 심어주게 되면 닷컴들은 제2의 도약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