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기침체 여파로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국가들의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되는 불황 도미노 현상까지 나타나 경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는 양상이다. 3.4분기나 늦어도 4.4분기에는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강조하던 정부까지도 이제는 전망이 불투명하다며 꼬리를 내리고 있다. 산업현장의 분위기는 과연 어떤가. 실상과 전망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 대구 성서공단에 있는 나일론 직물 제조업체 대준섬유. 건평 1천5백평 규모인 이 회사 공장 앞마당에는 팔지 못한 직물이 재고로 가득 쌓여 있다. 공장 출입문에는 아예 커다란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썩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계작동 소리는 간데없이 거미줄마저 눈에 띄는 공장 내부는 마치 전장(戰場)의 폐허를 연상케 했다. "대구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섬유업계가 붕괴 직전인데 무슨 놈의 경기회복이냐" 박노화(52) 대준섬유 사장은 경기전망을 묻는 기자에게 대뜸 울분을 토해냈다. 박 사장은 "섬유사업 26년 만에 공장을 세워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가동을 멈춘 공장을 바라볼 때마다 확 불을 질러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대준섬유는 경영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한달전 직물기계 1백대의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직원도 재고품을 팔 영업관리직 6명만 남기고 생산직 60명은 모두 정리해고했다. 박 사장은 "97년 말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때는 낮은 원화가치 덕분에 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며 "정부나 각종 기관에서 발표하는 선행 경기통계 지표를 더이상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서공단 내 다른 섬유업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공단 내 4백40여개 섬유업체의 가동률은 지난 1.4분기에 70%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통계상의 수치이다. 사람을 놀릴 수 없어 기계를 돌리다보니 통계상 가동률이 높게 나오게 마련이어서 주문 없이 생산한 재고품을 감안하면 현재 실질 공장가동률은 높게 잡아도 50∼60%에 불과하다"(성서공단 관계자)는 설명이다. 대구 염색공단에서 직물염색업체를 경영하던 전수명(49)씨는 경기침체를 견디지 못해 사장 자리를 넘겨주고 지난 3월 동종업체인 (주)을화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취재 중 만난 한 해고근로자는 "'세계 제일의 섬유도시 대구' '밀라노 프로젝트로 세계 첨단도시를'이라는 구호성 간판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근로자는 "품질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섬유업체들은 자연도태되게 마련이라고 하지만 시장 자체가 죽는데 어느 업체가 돈을 들여 품질을 높이겠냐"며 목청을 높였다. 대구=정구학.신경원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