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다시 '금리인하'라는 칼을 빼들었다. 한은의 이번 콜금리인하는 실물경기 흐름이 예상과 달리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우려감을 반영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통화당국이 물가보다 경기부양에 정책우위를 두는 전환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5일 회의에서 물가안정과 경기부양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놓고 장시간 격론을 벌였으며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한차례 정회하기도 했다. 한은이 물가목표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감수하면서까지 콜금리를 인하키로 한 것은 최근 악화된 실물경기 지표가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산업활동동향에서는 산업생산증가율이 전년동월대비 2.3%로 나타나 지난 2월 8.8% 이후 3월 6.4%, 4월 5.6% 등 3개월째 내리막길을 걸었고 재고증가율도 17.2%에서 18.7%로 높아졌다.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수출은 6월들어 4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하반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수출감소율이 잠정치기준 두자릿수에 이른 것은 지난 99년 2월 이후 처음이다. 반면 경기부양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금리인하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물가는 더이상 나빠지는 상황은 아니라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6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여전히 작년동월대비 5.2%를 나타냈지만 여기에는 농수산물 가격상승요인이 상당부분 반영됐으며 전월대비로는 0.3% 상승에 그쳐 하반기에더이상 악화되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철환 한은총재는 금통위 회의가 끝난 후 기자간담회에서 "콜금리를 인하했지만 물가목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기부진으로 수요면에서 물가상승압력은 거의 없어 콜금리 인하에 따른물가불안요인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두고 직간접적인 압박에 시달려오면서도현수준 유지를 고집해온 한은이 지난 2월에 이어 다시 금리를 인하키로 한 것은 현재 실물경기 흐름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우리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확대될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한은의 이번 금리인하가 경기부양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콜금리를 인하하면 장기금리가 내려가 소비나 투자가 늘어나는 것이 금리정책의파급경로지만 현재 민간투자는 금리에 민감한 상황은 아니다. 금리가 높기 때문에 투자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대내외 경제여건의 불확실성으로 투자를 꺼리는 것이다. 시중에 자금이 풀릴만큼 풀려있고 신용이 불안한 기업을 제외하고는 자금조달에애로를 겪는 기업은 드물다. 현재 콜금리수준이 높은 수준도 아니어서 금리정책이 먹혀들 가능성은 그다지커 보이지 않는다. 한은은 지난해 2월과 10월 0.25%포인트씩 두차례에 걸쳐 콜금리를 인상, 5.25%까지 올렸다가 지난 2월에 이어 이번에 다시 0.25%포인트를 내려 지난해 2월 이전수준으로 되돌렸다. 지난해 10월 인상이후 한은은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돌아서고 있는데도 판단을잘못해 오히려 금리를 올리는 우를 범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미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은 시장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도 금통위에서 언급된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금리인하가 실질적인 소비나 투자촉진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시장에서정책당국이 경기부양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시그널로 작용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전 총재는 대내외 경제여건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물가, 경기 및 금융시장 동향을 면밀히 점검해 향후 통화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겠다고 밝혀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으나 기대감이 이미 반영된 시장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서울=연합뉴스) 진병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