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가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정보기술(IT)업체 홍보를 대행하고 있는 I사의 이모 대표는 "인터넷 전화단말기 업체로부터 미수금을 받기 위해 얼마전 전화를 했더니 직원들 급여도 3개월째 못 준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말했다. 테헤란밸리에 위치한 기업간 전자상거래(B2B)솔루션 업체인 B사도 1년 가까이 월급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는 급여 지급이 지연되자 대표이사 주식을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도 여의치 않은 상황. 사람이 재산인 벤처기업에서 직원들이 떠나면서 당초 계획했던 사업일정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이 회사는 작년초까지만해도 투자를 가려서 받았지만 지금은 사채마저 조달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심지어 IT업계의 간판기업으로 불리는 모기업조차 사채시장을 기웃거린다는 소식도 퍼지고 있다. 벤처업계가 여전히 돈가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초기투자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던 시점(99년 하반기에서부터 작년 상반기)이후 후속투자가 제대로 이뤄지 않았기 때문.1년 정도 지나면서 자금이 말라버린 것. 최근들어 다시 벤처자금이 모여들기 시작했으나 벤처업계의 자금난을 해갈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해 12월엔 벤처펀드 결성규모가 월 3천6백56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후 위축된 모습을 보이다가 지난 4월 월 2천8백60억원으로 3월보다 1천6백억원 더 늘어났고 5월과 6월에도 벤처펀드 결성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펀드결성때 정책자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따른 현상이다. 아직 벤처캐피털 자신의 힘만으로 펀드를 조성하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 있다. 게다가 벤처캐피털은 자금이 있어도 과감한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거품의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어서다. 낮은 배수로 알짜 벤처에만 제한적으로 투자하고 있어 벤처업계 전반의 자금난을 해갈시키는데는 아주 미흡한 실정이다. 벤처캐피털 못지않게 벤처기업에 자금줄 역할을 해온 엔젤투자마저 완전히 얼어붙은 실정이다. 벤처업계가 프라이머리 CBO 발행에 목을 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생명을 이어줄 단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