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산규모 커질수록 비용은 점차 감소 ]

오늘날 우리가 별다른 생각없이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자판은 정보기술 산업(IT)의 발달과 관련,경제이론의 중심이동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른바 ''쿼티의 문제(QWERTY problem)''가 그것이다.

QWERTY란 컴퓨터 자판의 왼쪽 6개 키를 가리키는 말로 1873년 타자기가 탄생한 이래 1백30년 가까이 사용돼 왔다.

문제는 이 자판이 인체공학적으로 비효율적이어서 1930년대 그 대안이 될 만한 자판이 개발됐음에도 표준 자판으로서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는 데 있다.

왜 그럴까.

이를 설명하는데 알맞은 경제논리가 수확체증의 법칙이다.

수확체증이란 전통적인 산업에 적용되던 수확체감의 법칙에 대응되는 개념이다.

어떤 기업이 상품을 만들기 위해 생산설비를 갖추고 생산을 시작,일정 규모의 생산을 초과하게 되면 물건을 더 만들수록 평균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수확체증은 자본이나 노동과 같은 생산요소의 투입을 늘려 생산의 규모가 커질수록 비용이 점차 줄어들게 되고 수익이 커지는 것이다.

미국 산타페 연구소의 아서 교수는 이처럼 지식집약형 산업에서 수확체증이 발생하는 이유로 높은 신제품 개발 비용, 네트워크 효과,소비자의 타성을 꼽았다.

지식형 산업에서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지만 일단 개발되면 생산에 드는 비용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생산규모가 커질수록 초기비용을 희석시키는 효과로 인해 평균비용이 줄어든다.

또한 어떤 제품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될수록 호환성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편리한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한 제품을 오래 사용하다보면 익숙해져서 다른 제품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식집약형 산업에서는 어떤 제품이 시장을 선점하게 되면 시장점유율을 유지,확대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제 QWERTY 자판이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한 이유가 분명해졌다.

이같은 예는 무수히 많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베타방식을 제압한 VHS방식의 비디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장신화를 들 수 있다.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상황에서는 치열한 경쟁 끝에 살아남은 자의 승자 독식(winner-takes-all)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들이 종종 독과점 시비에 휘말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또한 제품의 우수성보다는 누가 먼저 출발했는지가 더 중요한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과 잠김(lock-in)효과로 인해 앞으로의 시장에 대해 예측이 불가능해 질 수 있다.

이른바 닷컴기업들이 가입회원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현상이나,신기술의 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생각의 속도''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논리의 바탕에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외대교수(경제학) tsroh@maincc.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