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영혼은 무섭다.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지독하게 ''고문''하는 것은 물론 때로는 환부를 흉기로 타인을 위협한다.

신예작가 이화경(37)씨는 6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된 첫 창작집 ''수화(手話)''(민음사)에서 육체와 영혼의 고통에 신음하는 인간군상의 삶을 추적한다.

이씨는 개인내면의 진술에 의존하던 90년대 여성작가들의 경향에서 벗어나 세상과 격리된 다양한 인물들의 아픔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표제작 수화에 등장한 서른아홉살 독신 노처녀 ''나''는 여고시절 고향집에서 작두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잃어버린다.

앞이 캄캄한 생 앞에 다정한 친구가 구원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애정은 집착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결국 그녀는 나를 버린다.

이후 나는 세상과 담을 쌓고 교정 프리랜서로 살아간다.

나에게 ''프리''란 고독이며 고통을 의미한다.

프리는 굶는 데도 프리다.

손가락이 없는 나는 수화라는 소통수단마저 잃은채 세상에서 고립된다.

그저 ''통증을 느낀다는 것이 살아있음의 강력한 증거''라는 숙명앞에 체념할 뿐이다.

그 고통의 역설은 또 다른 작품 ''생이 가렵다''에서도 나타난다.

주인공 ''사내''는 선천성 고통 무감각증에 걸린 아들 때문에 번민한다.

아들은 무통증으로 인해 자기 손가락을 물어뜯어 핏방울로 그림을 그린다.

사내의 선친은 다리가 잘린 후 마치 그 다리가 아픈 것 처럼 느껴지는 ''환통(幻痛)''에 시달렸다.

아들과 아버지의 무통과 환통은 당사자와 가족들을 극도로 괴롭힌 ''악마들''이란 점에서 상통한다.

작가는 가정이 결코 상처받은 인간들의 안식처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춰낸다.

''둥근잎 나팔꽃''에 나오는 ''나''는 가족의 감옥에 갇혀 자아실현 욕구를 상실한 여성이다.

나는 억압의 사슬을 끊고 출구를 모색한다.

그것은 가족의 눈물이 먹이를 삼키고 소화하기 위해 흘리는 ''악어의 눈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각에서다.

작품 ''음력십삼월''속의 공양주보살과 아이도 일그러진 가족의 희생양이다.

작가는 육체와 영혼이 훼손된 자들을 위한 ''섣부른'' 화해나 치유책을 어디에서도 내놓지 않는다.

''치유에의 헛된 희망''을 버리고 절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거짓 희망''과 ''가짜 위안''에 매달리지 않고 고통을 직시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뜻에서다.

국문학 박사인 이씨는 지난 97년 ''세계의 문학''에 단편 ''둥근잎 나팔꽃''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