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은 참을 수 있어도 전공과 거리가 먼 일로 시간을 때우는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통상교섭본부에서 통상전문관으로 일하다 최근 "본업"으로 복귀한 K 변호사의 "귀거래사"다.

국제통상법을 전공한 그는 공무원을 지망하면서 나름대로의 포부가 있었다.

전공을 살려 대외통상 현안에 대한 법적 대응논리를 개발하는 일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종일 각종 보고서를 쓰기에 바빠 정작 본업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2, 제3의 ''K 변호사''들이 한때의 꿈을 접은채 속속 관가를 떠나고 있다.

''적소(適所)''에 ''적재(適材)''를 수혈받아 행정의 질을 끌어올리자던 개방형 공무원제도의 도입 취지는 그야말로 ''말 뿐''이었던 셈이다.

대학 교수라는 안정된 자리를 내놓고 계약직 공무원으로 변신한 기획예산처의 P 국장은 개방.계약직 제도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탁월한 업무 장악 능력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지금의 일에 꽤나 만족해 하고 있다.

그런 P 국장이지만 K 변호사의 푸념을 ''이유 있다''고 말한다.

차제에 보다 정교한 개방.계약직 활용방안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오석홍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민간부문의 최고 전문가를 ''모셔 오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개방.계약직 제도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고 단언한다.

내부 공무원에게 유리하게 돼 있는 채용 절차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는 "현재의 개방형 공무원제도는 ''행정 전문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유능한 민간 전문가의 등용을 가로막고 있다"며 "외부 민간인들에게는 가산점을 주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 고위직에 결원이 생길 때마다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최고의 적임자를 비공개적으로 물색하는 방법도 검토할 시점"(황성돈 한국외국어대교수.정치학)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개방형 직위의 업무분석 재검토는 정부 내부에서도 나오는 목소리다.

미국처럼 직위분류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다.

공무원 직위마다 나이.학위.경력 등을 세밀히 규정해 능력과 업무에 따라 연봉을 차등 지급, 유능한 민간인 전문가들을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민간출신 공무원들은 공직사회 적응을 도와줄 트레이닝 코스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프록터 앤드 갬블(P&G)에서 기술 및 조직관리 담당 이사로 근무하다 환경부 상하수도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남궁은 국장은 "공직사회에 적응하는데만 1년, 소기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2∼3년의 기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직사회뿐만 아니라 민간부문도 공무원들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권상 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책심의관은 "공무원으로 일했던 사람이 언제라도 민간부문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문화가 정착돼야 민간과 공직사회의 인사교류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