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웅 < 대한상공회의소 상무이사 kwom@korcham.net >

19세기 영국 공상소설가 H G 웰스의 작품들은 드라마 소재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중 ''투명인간''은 흑백영화시대부터 자주 등장한다.

작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할로우맨''은 실험실 연구원이 약을 먹고 사라져가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장면이 새롭다.

스토리는 예나 지금이나 죽음으로 결말이 난다.

그 비극은 인간 내심에 숨어있는 욕망의 지나침에서 비롯된다.

다소 이상할지 모르나 최근 투명성이 강조되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같은 숙명을 가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투명인간은 자신의 비틀린 마음에서 죽음이 싹튼다.

하지만 기업은 투명성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이들의 과욕에 의해 비극이 시작된다.

기업의 투명성은 투자자를 위해 유리창을 잘 닦아서 회사 내부를 쉽게 들여다보자는 데 있다.

IMF이후 몰려온 외국투자자들은 기업에 대한 우리의 평가잣대가 불만스러웠다.

회사를 지배하는 경영구조 또한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세계은행이 회계방식을 바꾸고 더 많은 감시제도를 만들어 투명성을 높여 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는 회사법을 고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올해 국회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회사의 대주주가 이사를 선출하는 권리를 대폭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만일 주주총회에서 소수주주들이 자신의 이사를 따로 뽑는 집중투표제를 채택하면 51% 주식을 가진 대주주라도 경영권을 갖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시민단체는 이러한 이사 선출방식을 모든 기업에 적용하자는 더욱 위험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감시 기능이 지나쳐 회사가 흔들리면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있어야 할 기업은 투명인간과 같은 불운을 맞이한다.

너무 공개된 기업은 영업기밀이 새어 나간다든가 잦은 송사(訟事)에 휘말려 경쟁력을 잃고 끝내 죽게 된다.

기업도 사람처럼 생명을 가진 유기체와 같다.

투명성만 강조되는 실험대상이 아니다.

법과 제도가 균형을 잃지 않고 중용을 유지해야 기업도 살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