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 LG 명예회장 >

아산이시여- !

불모의 풍토 위에 산업보국의 웅대한 일념으로 큰 족적을 남긴 그 애착 많은 이 땅을 어쩌면 그렇게 훌쩍 버리십니까?

그동안 우리는 아산의 신양(身恙)을 근심하기는 했으나 타고난 건강과 강인한 의지로 은연중 회복의 날을 기대해 왔는데 돌연 임종이라는 비보를 접하게 되니 표현키 어려운 허탈감과 슬픈 마음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산께서는 우리 시대의 불세출의 경영인이셨고,원숙한 경륜가이시자 탁월하신 경세가이셨습니다.

강원도 산골 소년에서 세계적인 기업가가 되기까지 한국 동란의 전화와 초토 위에서 당신이 그려낸 파란 많은 인생역정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산 역사요, 산 증인이셨습니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불굴의 의지와 과감한 용기,남보다 두세 걸음 앞서 내다볼 수 있었던 경영감각과 그 추진력은 한국인의 표상이자 귀감이셨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그 어느 것 하나 여의치 못하던 시절, 공업입국의 기치 아래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 역동적인 에너지를 분출시키시던 그 시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산께서 직접 진두지휘에 나섰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항공사와 서산방조제 물막이 공사에서 보여준 장쾌한 모습하며, 88서울올림픽을 유치했을 때의 감격, 중국을 상대로 경제외교를 펼치던 담대한 모습, 그리고 금강산 개발 등, 당신의 진면목을 다양한 시각을 통해 우리 역사에 각인시켜 놓으셨습니다.

반세기 동안 닫힌 민족분단의 휴전선을 밀치시고 소 떼를 몰아 판문점을 넘어 북으로 들어가실 때의 모습은 통일 민족사에 굵은 획을 긋는 통쾌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수년 전 아산전기 출판기념회에서 있었던 당신의 인사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은 언제나 희망을 품고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온 80여 년이었으며, 살아 있는 날까지 희망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한 그 다짐처럼 아산의 일생은 ''희망으로 살다간 87년 세월''이었습니다.

나와는 10년 연배이신 아산이셨지만 청운동과 원서동에 이웃해 살면서 격의 없이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선배요, 재계의 동지였습니다.

1977년 전경련 회장을 맡으신 후 재계가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얻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10년 동안 우리의 결속과 단합을 이끌어 내신 재계의 수장이셨습니다.

전경련 회장을 다섯 번 연임한 후 고사를 거듭해 온 나를 굳이 후임 전경련 회장에 추대하여 어려웠던 5·6공화국 시절, 우리 재계가 당면한 여러 대소사(大小事)를 상의하면서 함께 했던 시간들이 새삼 뇌리를 스쳐갑니다.

어느 외국인 학자가 말한 것처럼 아산은 "파괴로 얼룩진 시대에 건설을 외치며, 몸을 던져 한국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자임한 한국의 건설자"이시며, 불멸의 업적을 남긴 한국경제의 대형(大兄)으로 길이 남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다 펴지 못한 구상과 포부를 모두 접으시고 이처럼 아산께서 홀연히 떠나신 지금, 그토록 염원하시던 선진국의 문턱에서 계속되는 경제위기의 국난을 바라보자니 아산의 깊은 경륜과 일념통천(一念通天)의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리워집니다.

그러나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가 인지공도(人之公道)이거늘 이미 유명을 달리한 아산兄을 불러보고 한탄한들 무엇하겠습니까?

우리 재계 동지들은 한국 경제의 큰 별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딛고 그 높은 뜻을 계승하여 21세기 통일민주국가로서의 경제발전을 기필코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또한 형의 고택에는 자질이 출중하신 자제들이 유업을 더욱 번창하게 할 것이오니 후사를 걱정 마시고 부디 파란만장했던 그 시절의 무거운 짐을 벗으시고 평안히 잠드소서.

오늘 구자경은 삼가 두 손 모아 아산兄의 명복과 영생을 빌면서 부디 극락왕생 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