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엔 동네마다 신기료 장수가 있었다.

신고 또 신어 입을 딱 벌린 신발도,밑창에 동굴이 뻥 뚫린 신발도 그 손에 쥐인 쇠바늘과 망치하나면 감쪽같이 말짱한 신발로 변신하곤 했었다.

너도 나도 지독하게 가난해서,다 떨어진 신발을 기워 신어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던 그 시절. 이란의 신예 감독 마지드 마지디의 97년작 "천국의 아이들"(17일 개봉)은 신기료 장수와 함께 묻혀간 옛 추억같은 영화다.

주인공은 아홉살 소년 알리(미르 파로크 하스미얀)와 여동생 자라(바하레 시디키).공장에 다니는 아버지,허리를 다쳐 누운 어머니,갓난동생까지 모두 다섯식구가 단칸방에서 산다.

5개월째 집세가 밀리고 식료품 가게에 달아놓은 외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난한 집이다.

영화는 신기료 장수가 낡은 구두를 깁는데서 출발한다.

옆에 쪼그리고 앉은 꼬마가 알리다.

동생의 달랑 하나뿐인 구두를 고쳐 들고 오던 알리는 그만 도중에 구두를 잃어버린다.

울상이 된 동생.결국 남매는 알리의 운동화를 번갈아 신기로 한다.

오전반인 동생이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갔다오면 오후반인 오빠가 신고 가는 식이다.

여동생은 오빠가 학교에 늦을세라 수업이 끝나자 마자 부리나케 달려온다.

지각할까 발을 동동 구르던 오빠는 신발을 신자마자 죽어라 학교로 뛰어간다.

오누이의 달리기가 반복되는동안 갖은 곡절도 생긴다.

운동화가 도랑에 빠지기도 하고,말렸다가 신으려고 빨아 널어놓은 운동화가 밤새 내린 비로 폭싹 젖어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희망이 생겼다.

전국 어린이 마라톤 대회다.

3등상 운동화!알리의 눈이 번쩍 뜨인다.

동생에게 새 운동화를 줄 수 있는 찬스다.

드디어 대회날.이를 악물고 내달리는 알리.관객들은 어느새 손에 땀을 쥐고 "우리 알리"를 응원하게 된다.

"천국의..."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등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이래 자파르 파나히,파라드 메흐란파르 등으로 이어져온 어린이를 다룬 이란영화들과 같은 선상에 있지만 결코 바래지 않은 매력을 과시한다.

신발 한켤레로 풀어가는 단순한 이야기 속에는 풍부한 은유와 메세지가 겹겹이 담겨 있다.

닳아빠진 운동화는 오누이의 깊은 정을 실어내기도 하고 "삐까뻔쩍"한 신발들과 나란히 비춰지며 빈부격차를 말없이 보여준다.

번영과 부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시내의 휘황찬란함은 신발 하나 사달라고 말하기 힘든 엄청난 가난이 지배하는 뒷자락의 존재를 선명히 부각시킨다.

동생이 잃어버린 자신의 구두를 신은 아이를 발견하고 오빠를 앞세워 쫓아갔다가 훨씬 사정이 딱하다는 사실에 돌아서는 모습이나,정원일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멀고먼 부촌으로 향하는 부자의 모습엔 네오 리얼리즘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에 대한 오마쥬(존경)도 있다.

없는 살림에 더 힘겨운 이웃에게 정을 베푸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구질구질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삶의 빛나는 가치를 본다.

"거리캐스팅"됐다는 꼬마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엔 상찬이 아깝지 않다.

풀죽은 동생에게 새연필을 쓱 쥐어주거나,동생에게 신발을 타주기 위해 발이 죄 부르트도록 달리는 오빠나,눈물이 그렁하다가 오빠의 위로에 햇살처럼 미소짓는 여동생은 꼭 안아주고 싶을 사랑스럽다.

거칠지만 순박한 생명력과 소박한 희망이 펄떡이는 영화.이란영화 특유의 마법같은 매력을 한껏 느낄수 있는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