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은 시장원리에 따라 처리한다는 ''상시퇴출제도''가 작동한 첫 사례입니다"

고려산업개발의 최종부도처리가 발표된 지난 3일 오전에 만난 재정경제부 관계자의 평가다.

부도직전의 상황을 보면 그런 평가가 나옴직하다.

고려산업개발이 79억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위기에 몰렸던 지난 2일.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에서 열렸던 채권단 회의는 30분만에 끝날 정도였다.

"신규자금 지원은 없다"는 원칙만 되풀이 됐다.

담당 임원도 오후 8시가 되자 퇴근해 버렸다.

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 현대상선 등 계열사도 손을 놓긴 마찬가지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부실계열사에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 회사 방침"이라고 전했다.

현대건설이나 현대전자 등 대기업이 자금난에 봉착했을 때마다 은행 임원들을 불러모았던 금융당국도 이번 만큼은 모르는 척 했다.

애를 태운 쪽은 밤늦게까지 돈을 구하기 위해 주주와 채권은행을 쫓아다녔던 고려산업개발 직원과 아파트입주예정자, 하청업체들 뿐이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고려산업개발의 부도는 ''시장원리''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부도를 놓고 상시퇴출제의 정착을 주장하기는 아직 성급하다는 것이 금융계의 지적이다.

이 회사는 현대그룹 계열사라는 점 때문에 지난해 11월3일 은행들이 퇴출기업을 선정할 때 ''정상기업''으로 분류했던 회사다.

올초에는 회생가능기업 지원을 위해 만기회사채를 은행들이 되사주는 ''회사채신속인수'' 대상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때는 정상기업으로, 또 회생가능 기업으로 분류됐던 회사가 갑자기 달라진 채권은행 주주 정부당국의 무관심속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시장의 차가운 평가와 함께 ''관계기관들의 의도적인 외면''속에 부도처리된 측면이 강하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갓 시작된 상시퇴출제도의 정착을 위한 ''희생양''이 됐다" "현대건설 회생과 맞바꾼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상시퇴출제도의 성공적 정착은 굵직굵직한 다른 부실기업도 앞으로 이렇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달려 있다.

김준현 경제부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