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위원회 모 팀장은 요 며칠새 자정이 다 돼 퇴근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렇다 할만한 이슈가 없었던 올들어서는 드문 일이다.

"2일 있을 경제장관 설명회 자료를 만들려면 금융감독원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금감원 직원들이 전화를 받아야죠. 별 수 없이 옛날 자료를 다 뒤져서 자료를 만들려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요"

금감위 다른 실무 과장들의 사정도 마찬가지.금감원 직원들이 일제히 정시 출퇴근 투쟁에 들어가 일찍 퇴근함에 따라 평소보다 일거리가 많아졌다.

그러나 금감원 관계자는 "정시 출퇴근은 투쟁의 시작일 뿐"이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8백여명의 금감원 직원들은 지난달 26일 궐기대회를 갖고 그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총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그 ''뜻''이란 최근 공개된 ''금융감독기구 개편방안(시안)''의 완전 철회다.

시안의 내용은 금감원의 감독업무를 금감위로 옮기고 금감원 조직을 줄이겠다는 것.

금감원은 이를 두고 공무원조직인 금감위가 민간조직인 금감원을 장악하겠다는 음모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례적으로 금감원 국장급 36명도 투쟁 대열에 동참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양쪽 기관 모두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한마디로 통합금융감독기구는 출범 2년여만에 심각한 내홍(內訌)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감독기구 개편방안이 제기된 것은 잇단 금융사고와 비리로 상처 입은 금감위와 금감원을 개편, 감독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사고발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줄이자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논의가 진행되면서 같은 건물에서 같은 사람의 통제를 받고 있는 금감위와 금감원이 관(官) 민(民)으로 나뉘어 마치 힘을 겨루는 양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국민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한 독자는 "금감위나 금감원이 어떻게 다른 거냐.누가 누굴 장악하든지 무슨 상관이냐.감독기관은 금융기관을 제대로 감독하고 그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고객이 예전보다 편해지면 될텐데 또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것 아니냐"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수진 경제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