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대교 교각 양쪽에는 강의 수위(水位)를 나타내는 백색 눈금과 숫자가 새겨져 있다.

이 눈금들은 한강 상류에 큰비가 와서 홍수가 나면 댐들의 수문을 열거나 닫아 수해를 예방하기 위해 새겨 놓은 것이다.

지금은 한강과 인천앞 바다의 수위 변동을 자동 측정하는 시스템을 통해 한강 홍수통제소에서 수위를 조절하지만 이전에는 사람이 직접 교각의 눈금을 읽어 상류댐에 연락,수문을 통제함으로써 서울의 수해를 막았다.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서울의 수해를 예방했을까.

세종은 한강변의 암석 위에 자(尺)·치(寸)·푼(分)의 눈금을 새긴 표(標)를 세우고 나루를 관장하는 도승(渡丞)이 한강의 수위를 호조(戶曹)에 수시로 보고하도록 했다.

세종대에 세운 수표는 수위계(水位計)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물시계와 더불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과학측정기구의 하나다.

당시 서울 한복판에는 청계천이 흐르고 하천 주변에는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큰비가 와서 청계천이 넘치는 날이면 장안이 온통 물바다가 됐다.

세종23년(1441년) 8월에 청계천 마전교 서편 물 가운데에 높이 3m,폭이 20㎝ 정도의 나무기둥을 세워 자(尺)·치(寸)·푼(分)의 눈금을 새긴 수표를 세웠다.

영조 49년(1773년)에는 청계천이 준설되면서 화강암으로 세종대의 수표를 복원했다.

화강암으로 만든 방추형(方錘形)수표 앞면에는 20㎝가 조금 넘는 주척(周尺)으로 한자(一尺)마다 눈금을 새겨 열자(十尺)까지 새겼다.

기둥 위에는 연잎 모양의 머릿돌을 얹고 밑에는 방추형의 초석을 땅에 박았다.

물이 흘러내려 오는 방향의 전면은 유선형으로 조각,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눈금을 정밀하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뒷면에는 3척 6척 9척 위치에 어른 주먹 크기의 구멍을 파서 각각 갈수(渴水) 평수(平水) 대수(大水)를 헤아리는 표식으로 삼았다.

대수까지 물이 차면 대피령이 내려져 청계천 주민들은 높은 지대로 피난을 갔다.

1960년대에 청계천을 복개하면서 마천교(수표교)는 장충동 공원으로 옮겨 복원하고 수표는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서울의 흉물이 되어버린 청계천 고가도로를 헐어 청계천을 복원하고 옛날 그 자리에 수표교와 수표를 복원한다면 세계적인 과학문화재 관광명소가 될 것이 확실하다.

남문현 건국대 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