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서강대교수>

지난 연말 경제상황은 암울했다.

밝아오는 새해의 국내경제 전망은 어떠한가.

지난 일을 돌이켜 앞날의 길잡이를 삼아 보기로 한다.

97년말 환란 이후 정부는 기업 금융 노동 공공 등 이른바 4대 개혁을 추진해왔다.

기업부문 구조조정은 당초 설정한 경영투명성 제고,상호지급보증 해소,재무구조 개선,핵심업종으로의 개편,경영진 책임강화 등 5대 기본과제와 후에 추가한 산업과 금융의 분리,계열사연결 단절,변칙상속방지 등 3대 과제를 추진해왔다.

노동부문 개혁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고용안정 및 실업대책,임금안정 및 노사협력 증진,노동기본권 보장,사회보장제 확충 등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금융부문 구조조정은 금융기관의 퇴출,합병 등 강도 높은 부실정비,경영진 책임강화,경영투명성 강화 등 경영내실을 다지고자 했다.

공공부문 개혁은 정부조직 개편,공기업 민영화 등을 지향했다.

이같은 정부의 개혁노력에도 불구하고 2001년의 문을 여는 지금의 경제상황이 97년때보다 오히려 더욱 악화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가.

착각 또는 건망증 때문인가.

아니면 해외시장변화 탓인가.

근래 세계경기의 버팀목인 미국경제가 하락세를 보이는 것이 걱정일 뿐,진정세로 돌아선 국제유가 오름세,잠잠한 해외투기자금 움직임 등을 보면 악재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경기침체의 원인은 국내에 있다.

정부가 그간 무성한 개혁구호를 남발하면서도 경제문제보다 남북문제 등 정치외교 문제에 힘쓰고,경제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도 생산보다 분배에 치중한데서 뒤틀린 일의 실마리가 있어 보인다.

재벌을 비롯한 기업 두들겨 패기,금융기관 손보기에 정부의 기량이 가장 돋보였다.

초기 기업 구조조정의 상징은 이른바 ''빅 딜''과,대기업 부채비율 2백% 축소였다.

문어발식 경영을 핵심업종 중심 경영으로 유도한다는 ''빅 딜''의 좋은 취지는 무리한 짝짓기로 성공보다 실패한 것으로 치부된다.

업종특성을 무시한 획일적 부채비율 인하는 부채규모의 감축보다 자산매각,증자,자산재평가 등으로 눈가림으로 달성했다.

정부숫자 놀음에 기업도 같은 놀음으로 화답한 셈이다.

사외이사 등 미국식 제도가 일본식 관행에 젖어온 국내풍토에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노동계를 보듬어 안고 정책운용의 파트너로 끌어안으려 애써 왔다.

현정부 출범 직전에 발족시킨 노사정 위원회가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그러나 실제 동위원회 운영은 구태의연했다.

중소규모이하 비숙련 비조직 노동시장을 제외하면 시장 유연성에 별무변동이었다.

민간 대기업 및 공기업부문의 노동시장은 전투적 노조 위압에 눌려 철밥통이 건재하다.

공기업 민영화 등 공공부문 개혁이 이래서 부진하다.

노조파업 시위대 앞에만 가면 위축되는 정부개혁 의지 때문에 금융개혁이 변질 지체되고 있다.

이같이 뜨뜻미지근한 정부의 개혁자세가 자금보유자의 국내금융기관과 그들이 판매하는 금융상품에 대한 불신을 가져와 금융자산구조를 왜곡 압축했다.

신용경색은 신용추락의 산물이다.

CBO(채권담보부증권),ABS(자산담보부증권) 등 신기한 이름의 상품을 내놔도 잘 뜨지 않는 것은 정책불신 때문이다.

정부는 그간 인기영합이란 호랑이 등을 타고 달려 왔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대중이란 이름의 호랑이는 권력누수기의 정부의 이빨을 들어내는 법이다.

권력 재창출의 단 꿈을 버리고 선명한 개혁의지를 보여야 일말의 승산이라도 기대할 수 있다.

아마도 은행파업을 계기로 정부의 개혁의지가 판가름날 것 같다.

한 점 의혹 없이 투명하게 노사분규가 경제원리대로 처리된다고 전제하고 새해경제를 내다보면 긴 터널 끝에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그 불빛을 대낮같이 밝히려면 경제주체들이 절제하고 노력해야 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