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구조조정이 흔들리고 있다.

22일 새벽에 발표된 노정합의는 금융개혁 일정을 뒤로 미루는 내용 일색이다.

특히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에 대한 처리일정 연기는 구조조정의 포기에 가깝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우량은행간 합병문제를 노조와 합의하라는 내용 역시 정부의 또한번 "말바꾸기"다.

<>공적자금만 투입하나=노정합의에 따라 평화 광주 경남 제주은행은 한빛은행 주도의 금융지주회사에 편입되더라도 2002년 6월까지 독자생존을 보장받게 됐다.

당초 내년 10월께 기능별로 재편하겠다는 일정이 8개월가량 연기된 것이다.

부실은행은 청산이나 자산인수방식(P&A)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외부의 의견을 무시한채 금융지주회사에 집어넣겠다고 했던 정부가 노조에 밀려 이젠 벼랑끝까지 몰린 셈이다.

더욱이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은행들에게 1년이란 기간을 주면서 공적자금은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는 내용도 앞뒤가 안맞는 모순투성이다.

공적자금을 한꺼번에 투입해 클린화시켜도 이들 은행은 경쟁력 확보 여부가 불확실한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는 발상은 사실상 이들 은행이 공적자금을 까먹을 수 있는 시한을 준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재웅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회생 기한을 주려면 왜 공적자금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독자생존 기회를 보장받은데 따라 이들 은행이 지주회사로 편입되더라도 모(모)회사의 권한은 사실상 없어 통일적인 업무 시너지 효과 역시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대해 남상덕 금융감독위원회 조정협력관은 "지주회사에 편입되면 새로운 경영진이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이라며 "금융구조조정은 계속적으로 추진해야할 과제"라고만 말했다.

<>금융구조조정 후퇴=우량은행간 합병논의를 노사합의로 추진한다는 것 역시 금융구조조정의 후퇴를 가져오는 내용이라는 지적이다다.

국민과 주택은행간 합병문제는 "대주주와 경영진이 알아서 할 일"이라던 정부당국자들이 노조반발에 밀려 또다시 말을 바꿨다는 얘기다.

문제는 은행간 합병문제는 노사합의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는 데 있다.

금융노조는 국민-주택간 강제적 합병철회를 요구하고 파업투쟁중이다.

김상훈 국민은행장,김정태 주택은행장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노조 요구를 받아들이든지,파업으로 은행이 파행경영을 겪더라도 합병을 추진하는 것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인데도 그동안 두 은행간 합병에 대해 깊이 관여했던 정부당국은 뒤로 물러섰다.

"손에 피를 묻힐 일"은 은행장이 하라는 것으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

은행 관계자는 "이렇게 노조와 합의하려면 왜 합병가능성을 자꾸 흘렸는지 모르겠다"며 "원칙도 없고 배짱도 없는 정부당국자들 때문에 문제만 더욱 꼬이게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노정합의에 따라 제주은행이 신한은행의 자회사로 편입되는 문제도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우량은행과 지방은행간 짝짓기마저 실패하는 셈이다.

결국 이번 노정합의로 <>공적자금 투입후 지주회사편입으로 부실은행 정리 <>우량은행간 합병을 통한 대형화로 경쟁력 향상 <>우량은행과 지방은행간 짝짓기 라는 2차은행구조조정의 3가지 큰 축은 사실상 무너지고 말았다.

권영준 경제정의실천민주연합 금융위원장은 "이는 공공부문이나 기업구조조정에도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준현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