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의 노사협상이 끝난 뒤에는 항상 이면합의설이 따라다닌다.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 노조는 지난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수화력 플랜트사업단 매각에 반대하며 40여일 동안이나 파업을 벌였다.

회사측은 노조의 파업투쟁에 밀린 끝에 민영화 계획을 백지화하겠다는 내용의 이면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노조원들에게는 파업 철회의 대가로 엄청난 ''포상''이 돌아왔다.

1천4백69명이 1호봉씩 특별승급됐고 유급휴가 늘리기와 퇴직금 과다 계상, 사내근로복지금 운영 등으로 5백억원의 예산이 날아갔다.

감사원은 이같은 파행 경영이 물의를 빚자 사장을 경질시키도록 조치를 취했다.

최근에는 이 회사의 모기업 한전이 이면합의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민영화 및 회사 분할에 반대해 전면 파업의 으름장을 놓았던 노조가 정부 방침을 수용하는 대가로 한전 자회사로 옮기는 직원에 대한 임금 인상 등 8개 항목에 걸친 ''선물''을 주기로 이면 계약을 맺었다는 것.

한전측은 ''설''에 불과할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의혹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도 비슷한 구설수에 올라 있다.

지난달 6일 극적인 노사합의로 84일간 계속됐던 노조 파업을 끝낸 직후 터져나온 이면합의설 탓이다.

노사합의 당시 공단측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관철시켰다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실상은 ''무노동 무임금''과는 멀었다.

최근 공단측은 3급 이하 직원 5천5백13명에게 12월중 1인당 3백만원의 생활안정자금을 3% 이율로 지원한 뒤 4개월 동안 월급 또는 시간외수당으로 상환토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파업 기간중의 임금 일부를 보전해 주기 위한 편법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건 당연하다.

담배인삼공사의 경우 기획예산처가 제시한 인력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근 4백90여명으로부터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하지만 ''눈가리고 아웅''식 임이 곧 드러났다.

명퇴자들에 대해선 1년 후에 다시 받아들이기로 약속하고 공식 퇴직금 외에 1천만∼6천만원을 더 얹어주기로 했다.

더욱이 명예퇴직한 직원의 자녀들에게는 내년 이후 계약직 취업을 허용하고 고용상황에 따라 정규직 사원으로 전환해 주기로 하는 ''보너스''까지 얹어줬다.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공기업 구조조정 시한으로 정한 내년 2월을 넘기면 그만''이라는 편법의 극치를 보여 줬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그밖의 다른 공기업들도 대부분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노조에 각종 이면계약을 해줬다가 들통이 났다.

기획예산처가 지난해 연말까지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토록 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기관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자 시간에 쫓긴 경영자들이 이면계약을 남발했던 것.

부실의 골이 깊어 정부에 공적자금 2조원을 요청한 대한주택보증까지 노조와 사내복지기금에 추가로 출연한다는 등의 내용에 이면합의해 줬을 정도다.

이같은 이면계약에 대해 공기업 내부에서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시한에 쫓기거나 회사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 출신 인사가 최고경영자로 있는 한 노조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식의 ''뒷거래''에 대해서는 노조 내부에서조차 반성론이 나오고 있다.

한전의 한 노조원은 "지도부가 순수한 명분을 팔아 돈과 맞바꾼 것 같아 주변의 눈총이 따갑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결국 이면 계약은 경영 능력과 소신 없는 경영인이 잠시 위기를 넘기려고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전에 이면계약이 있었다면 결국 노조에 덜미를 잡혀 더 큰 것을 잃을 수밖에 없는 근시안적인 발상"(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성택.김도경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