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환율이 급격히 오르면서 자녀를 미국 등으로 유학보낸 학부모들이 고심하고 있다.

송금해야 할 학비와 생활비 부담이 커진 때문이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때 처럼 자녀를 국내로 불러들여 군대에 보내야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대학 유학이나 단기 어학연수를 계획했던 젊은이들과 조기유학을 추진하던 학부모들은 대부분 "당분간 보류"로 돌아섰다.

요즘 원화 환율은 미국 달러당 1천2백원대를 넘어서 있다.

지난 3월말 달러당 1천1백원선이었을 때보다 10% 가까이 오른 수준이다.

경제 여건을 고려하면 원화 환율은 더 올라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더군다나 경기는 바닥이다.

환율이 오른 데다 학부모들의 수입이 줄어 부담은 곱배기로 커졌다.

내년의 경기는 더 나빠지는 것으로 이미 결론이 나 있으니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두 아들을 미국에서 공부시키고 있는 중소건설업체 사장 김성출(53·서울 청담동)씨는 "송금 시기가 다가오면 마치 어음결제가 돌아오는 듯한 기분"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두 아들에게 한번에 1만달러씩 1년에 네차례 학비를 보낸다는 김씨는 "건설경기가 가라앉아 사업도 안되는데 송금 시기는 제삿날처럼 꼬박꼬박 돌아와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말한다.

김씨는 환율이 더 오르기 전에 환전을 해 그나마 부담을 줄여 보려고 얼마전에 있는 돈을 다 털어 달러로 바꿔 놓았다고 한다.

"큰 아들이 자진해 군대에 가겠다며 들어오겠다고 하지만 ''아직은 견딜만 하다''며 말렸다"는 김씨는 "환율이 계속 오르고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큰 아이 말대로 해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주부 류성희(40·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씨는 "올 겨울방학 때 초등학생 자녀 두명을 미국 단기어학연수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기로 했는데 환율이 올라 걱정"이라며 "당초 1명당 3백50만원으로 예산을 잡았는데 4백만원으로 늘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류씨는 부담이 적은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의 영어사용권 국가로 연수지역을 바꾸는 방안을 놓고 고심중이라고 털어놨다.

동대문시장에서 의류도매상을 하는 최한기(55·서울 방배동)씨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최씨는 지난 97년말 IMF사태가 발생하자마자 미국에서 공부하던 큰 딸을 불러들인 쓰라린 경험이 있다.

최씨는 이번엔 둘째(아들)의 학업마저 중단시켜야 할지를 놓고 부인과 매일 입씨름한다고 밝혔다.

학부모들 뿐만이 아니다.

해외 단기어학연수 상품을 취급하는 일부 여행사들도 요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세일여행사 김창원 사업본부장은 "올 여름방학 때는 미국 어학연수 상품을 내놓자마자 신청자가 몰려 이틀만에 마감했었다"며 "그러나 겨울방학 어학연수는 목표인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걱정했다.

이 여행사는 최근 3주짜리 미국 어학연수 상품을 3백79만원에 내놨으나 제대로 문의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김 본부장은 "뒤늦게 환율을 계산해 비용을 올릴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겨울방학 프로그램은 적자를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 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대부분 내년도 해외 직원연수 인원을 대폭 줄이거나 지원액을 삭감키로 해놓고 있다.

김상철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