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정권이 무너지고 있다.

남미의 페루에서는 10여년 동안 독재정권을 꾸려온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이 퇴임압력에 시달리다가 결국 19일 사임을 발표했다.

아시아에서는 대만의 천수이볜 총통,필리핀의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인도네시아의 압둘라흐만 와히드 대통령등이 국가수반 자리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해있다.

이들은 부정부패 스캔들로 스스로 정치생명을 단축시키고 있다.

이들 국가의 정국혼란은 경제위기로 비화돼 통화가치와 주가가 급락하고 있다.

특히 20일 대만증시에서는 정국혼란에 대한 우려로 가권지수가 6.2%(322.14포인트) 폭락한 4,845.21로 96년 3월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페루=일본에 체류중인 후지모리 대통령은 19일 "48시간내에 퇴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지난 9월 측근인 블라디미르 몬테시노스 국가정보부장의 야당의원 매수 스캔들이 폭로되면서 파문이 일자 내년 7월 조기퇴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후지모리는 당초 지난 17일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마친 후 일본을 거쳐 귀국할 예정이었다.

페루 언론들은 후지모리가 APEC 정상회담 참석 전부터 이미 사임을 결심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페루정국의 위기가 그로선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데다 새 국회의장에 야당의원이 선출되자 통치권의 한계를 절감,전격적인 사임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귀국하지 않고 일본이나 제3국에 망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대만=천수이볜 총통은 출범 6개월여 만에 퇴출당할 위기에 몰려 있다.

그는 지난달 대만북부의 제4핵발전소 건설중단을 결정,국민당을 주축으로 한 야당 연합세력과 재계로부터 반발을 산 후 줄곧 탄핵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민진당의 거물급 인사인 스밍더 전 주석이 탈당,''내우''까지 겹쳤다.

이어 다음날인 15일에는 여성보좌관과의 스캔들 의혹마저 폭로돼 천 총통은 더욱 궁지에 몰렸다.

◆필리핀=에스트라다 대통령은 1천만달러 이상의 불법 도박자금 수뢰와 독직혐의 등으로 지난 13일 하원으로부터 탄핵됐다.

그는 다음달 초 상원에서 최종 탄핵심판을 받는다.

상원은 20일 이를위해 탄핵재판소를 결성하고 대통령에게 소환명령을 내렸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려면 22명의 상원의원 중 15명 이상이 탄핵에 찬성해야 한다.

현재 상원은 여당이 8석,무소속 1석,야당이 13석이다.

따라서 에스트라다가 탄핵을 면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탄핵결과 여부에 관계없이 이미 국민의 90%가 에스트라다에게서 등을 돌린 터라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인도네시아=와히드 대통령도 바람 앞의 촛불 신세다.

와히드 정권의 개혁부진과 측근들의 잇단 비리의혹으로 국회는 지난 여름부터 계속 와히드의 탄핵을 거론해 오고 있다.

메가와티 부통령과 최대 이슬람단체 나들라툴 울라마(NU)는 와히드를 지지하고 있지만 악바르 탄중 국회의장은 와히드 축출에 앞장서고 있다.

악바르 의장은 특히 20일 대통령 탄핵문제를 논의할 국민협의회(MPR) 비상총회 소집 가능성을 제기,정국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